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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참여 없는 분권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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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참여 없는 분권정부

입력
2004.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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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들여다 보면 들여다 볼수록 희한한 것이 바로 한국 정치다.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 진영은 3김 정치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권 교체가 더 중요하므로 사당 정치 등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반면에 이회창 후보 진영에서는 3김 정치 청산이 중요하다며 세대교체론을 들고 나왔다. 이로부터 5년이 지난 2002년 대선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5년 전 세대교체론을 들고 나왔던 이회창 진영은 정권교체론을 들고 나왔고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에서는 정반대로 세대교체론을 들고 나왔다.최근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논쟁도 매한가지다.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자금과 측근 부패 의혹이 제기되면서 노 대통령은 국민투표로 재신임을 묻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그러자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재신임은 국민투표 사항이 아니라며 펄펄 뛰었다. 이후 한나라당이 민주당, 자민련과 함께 노 대통령 탄핵을 밀어붙이자 촛불시위라는 국민들의 저항이 일어났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한나라당은 국민의 투표에 의해 뽑힌 국민의 대표들이 헌법에 의해 부여된 탄핵권을 행사한 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식으로 대의제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들고 나섰다. 그러자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측에서는 국회와 민의가 대립할 경우 민의가 더 중요하다며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참여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의 상대적 우위를 주장했다.

그런데 행정수도 이전 논쟁은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부패 의혹 등에 대해 국민투표를 하겠다던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측은 행정수도이전에 대해서는 국민투표는 말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노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이 문제에 대한 국민투표를 약속한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지난 16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 하에 관련 법안이 통과됐으므로 국민투표를 할 근거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참여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대의민주주의의 우위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반면에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한나라당 강경파의 경우 언제부터 자신들이 참여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신봉자였다고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고 있다. 결국 여야 모두 원칙 없이 어느 것이 유리한가에 따라 그 때 그 때 논리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우선 한나라당이 제대로 행정수도 이전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논의하지 않고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준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 공개사과를 하고 당론을 수렴해 정정당당하게 밝혀야 한다. 그러나 이와는 상관 없이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그리고 문제가 이처럼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한 이상, 어떠한 방식이든 광범위하게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검증을 거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를 공약으로 내건 대선과 총선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이, 또 여야가 관련 법안을 합의하여 통과시켰다는 사실이 이 문제에 대해 국민투표를 할 근거가 사라졌다는 논거가 될 수는 없다. 국민들이 지난 선거에서 행정수도 이전 공약 때문에 노 대통령을 찍었는지, 아니면 다른 공약 때문에 찍었는지 어찌 아는가? 또 여야가 합의했으면 그것이 틀린 것이어도 국민은 침묵해야 하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지방 분권, 따라서 행정수도 이전에 찬성한다(다만 2003년 12월 19일자 칼럼 '부안과 행정수도 이전'에서 지적했듯이 통일을 고려해 장소는 서울 북쪽 강원도 어딘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참여민주주의도 찬성한다. 그리고 참여 없는 분권, 부안 사태처럼 행정독재 식으로 추진되는 분권은 진정한 분권이 아니다. 다시 말해, 굳이 참여와 분권 중 하나를 택하라면 참여가 더 중요하다. 노무현 정부도 스스로를 '참여정부'라고 하지 '분권정부'라고 부르지는 않지 않는가? 참여 없는 분권정부, 그것은 불가능한 형용모순이다.

손호철/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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