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는 출판계에서도 표정관리하는 두 부류의 출판사들이 있다. 하나는 스테디셀러를 내는 곳이고, 다른 한 부류는 충성스런 고정독자를 확보한 곳이다. 특히 전문 분야를 특화하여 톡톡 튀는 기획과 편집으로 만든 책들은 불황에도 꾸준히 팔리면서 출판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전통 명상서적, 카툰집, 사진집 등 덩치는 작아도 쏠쏠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책들을 매주 분야별로 소개한다.
2002년 4월에 나온 틱낫한 스님의 '화'(명진출판 발행)는 지금까지 100만부 이상이 팔려 명상서적으로는 최단 기간에 최고의 판매부수를 올렸다. 이 책은 마음을 다스리면 평안을 얻을 수 있고 행복에 이른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전제 하에, 오랫동안 수도한 스님이 치밀어오르는 화를 구체적으로 푸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 인기의 비결이었다.
이 책처럼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킨 적은 없지만, 최근 기본적인 마니아 층이 형성된 분야가 전통 명상서적이다. 명상서적 독자들은 기존 문학시장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몰고 다니는 숫자만큼은 이르지 못하나, 적어도 5,000부 정도는 소화하고 1만∼2만부까지도 내다볼 수 있는 확실한 시장이다.
이 시장에서 선도적인 출판사가 바로 '수선재'이다. 1999년 생긴 이 출판사는 그 동안 수련 일기집 '선계에 가고 싶다'(5만부 판매), 소설 '선(仙)'(6만부)을 비롯해 10여 종의 책을 출간해 탄탄한 입지를 굳혔다.
라디오 드라마 작가인 문화영(53)씨가 쓴 이 책들은 우리나라 전통 수련법인 선도(仙道)의 수련방법과 체험기를 담거나, 이를 극화한 소설 등이다. 선도는 단학선원이나 국선도 등에서 실시하는 단전호흡 등을 활용한 명상법. 여기서의 수련 단계는 자기 마음을 보고 깨닫는 견성(見性), 마음에서 벗어나는 해탈(解脫), 깨닫고 본 것을 몸으로 행하고 마음으로 익히는 종각(終覺)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전통 명상서적이 기본적인 부수를 유지하는 것은 선도를 가르치는 명상학교 '수선재'가 자리잡은 덕분이기도 하지만 일반인들 중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각 종교의 신자들은 물론 의사, 교사, 직장인, 학생들이 주 독자층이라는 게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지난 달 나온 '무심(無心)'은 명상에 웰빙 개념을 활용한 책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책에서는 삶을 힘들게 하는 부정적인 감정들, 예컨대 근심과 스트레스, 열등감과 피해의식 등을 쉽게 잊게 만드는 일종의 '건망증 명상법'을 소개하고 있다. 직장생활이나 부부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건망증을 활용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 책은 지금까지 6,000부가 팔렸다.
이처럼 전통 명상서적 독자층은 자기계발이나 처세술 등이 주를 이루는 실용도서 시장에서 일종의 틈새이다. '아침형 인간'이나 '10억 만들기'처럼 직접적이고 화끈한 메시지는 아니지만, 번잡하고 지겨운 현실에서 벗어나 마음을 가다듬고 평안을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통적인 명상법으로 접근한다는 게 장점이다. 한미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연구원은 "불황이 장기화할수록 새로운 시장 개척과 콘텐츠 발굴이 필요하다"면서 "전통 명상서적은 그런 시각에서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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