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엔 사랑과 안방 사이의 중간방에 두 개의 장롱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하나는 어머니의 장롱이었고, 또 하나는 할머니의 장롱이었다. 어머니의 장롱은 어머니가 시집을 올 때 외할아버지가 마당가의 오동나무를 베어 짜 보내주신 것이고, 할머니의 장롱은 그때쯤 며느리를 보는 할머니에게 할아버지가 새로 사 주신 것이라고 했다.두 장롱이 중간방에 나란히 같이 놓여 있어도, 할머니는 할머니의 장롱을 거의 이용하지 않으셨다. 우리 기억으로 할머니는 뒷사랑에 놓아둔 반닫이와 커다란 독을 더 많이 이용했는데, 그 독 안에는 삼베와 모시로 지은 할머니의 옷들이 아직도 스무 벌쯤은 한번도 꺼내 입지 않은 채로 차곡차곡 개어져 있었다.
예전에는 자신이 평생 입을 옷을 그렇게 시집올 때 한꺼번에 다 지어오는 것이라고 했다. 시집온 다음엔 자기 옷을 지어 입을 사이가 없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내가 열 살 때 그 독 안의 옷들을 다 입어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후에도 그 옷들은 오래도록 그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 손에 하나하나 태워져 다시 할머니에게 보내졌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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