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잠 못 이루는 밤’을 경험할 때가 많다. 남편과 싸웠거나 시어머니로부터 꾸지람을 들었을 때, 대부분 여성은 잠을 제대로 못 이룬다. 어쩌다 하룻밤 잠들기 힘들었다면 물론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서울대의대 정신과 정도언교수는 “문제는 다음 날 밤에도 불면을 걱정할 때” 라면서 “잠이 오려고 하는 힘보다 불안의 힘이 더 강하면 불면증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고 말한다. 불면의 덫에 한번 걸리면 헤어나오기가 상당히 힘들다는 것이다.
- 불면증, 여자가 50%나 더 많아
불면증은 여자에게 더 흔한 증상이다. 남자보다 1.5배는 많다. 40대 이후를 넘어서면 남녀 차는 더욱 벌어진다. 정교수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불면증을 이유로 병원을 찾는 여성이 남성보다 10배는 많다”고 말한다.
왜 여자는 남자보다 수면장애를 흔하게 겪을까? 정교수는 “불면증을 유발하는 심리적인 요인, 스트레스가 여성의 예민한 성품에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 우울증, 불안장애도 불면증에 영향
여성에게 압도적으로 많은 우울증, 불안장애도 불면증의 큰 요인이 된다. 수면의학 전문의들은 수면장애 클리닉을 찾는 불면증 환자의 절반 정도가 정신과적 질환을 동반하고 있었으며, 질환의 50%는 우울증이었다고 보고한다. 정교수는 “우울증은 여성이 남성보다 2~5배나 많은 질환”이라면서 “우울증 때문에 불면증 환자가 여성에게 훨씬 많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연구에서는 불면증을 가진 사람들을 진단했더니 정상인보다 2~3배 높은 정신과적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우울증 증세는 4배나 높게 나타났다는 것.
갑상선 호르몬도 불면증에 영향을 준다. 갑상선기능저하증이나 항진증을 앓고 있을 경우 우울증과 불면증을 나타낼 확률이 상당히 높아진다. 이 때문에 불면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내원했을 경우 수면의학전문의들은 갑상선기능 검사도 반드시 실시한다.
- 40대 이후 불면증은 호르몬 변화때문
불면증은 폐경기 혹은 폐경기가 임박한 중년여성에게 더 심하다. 35~55세 사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폐경관련 증상으로 호소한 3대 신체증상은 주로 불면증, 안면홍조, 식은땀이었다. 정교수는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분비가 폐경 이후 감소하기 때문”이라면서 “어떤 경로로 여성호르몬이 불면증에 영향을 미치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수면장애에 관여하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홍조증상 자체도 불면증의 원인이다. 온몸에 열기가 가득차며 얼굴 목 가슴 부위가 갑자기 벌개지는 홍조는 특히 밤에 심한데, 이 때문에 많은 여성들은 자다가 깬다. 또 중년이 되면 천식이나 COPD같은 병이 생기면서 기관지 확장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약부작용으로 불면증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 수면무호흡증은 남자가 더 많다?
불면증의 원인이라고 꼽을 수 있는 수면무호흡증은 남자가 여자보다 2배정도 많다. 수면무호흡이란 한동안 숨이 막혀 컥컥거리다가 한계점이 지나면 ‘푸’하고 숨을 몰아쉬는 것을 말한다. 하루에 30회이상 무호흡이 있으면 치료해야 할 수면무호흡증으로 진단내려진다. 3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수면무호흡증 유병률이 남자는 4.0%, 여성은 2.0%로 나타났다. 수면무호흡증의 전단계라고 볼 수 있는 코골이의 경우 남자의 유병률은 27.8%인데 비해 여자 유병률은 15.3%였다.
왜 여자는 남자보다 수면무호흡증이 적을까. 전문가들은 수면무호흡증의 원인으로 추측되는 비만이나 알코올 섭취 비율이 남성에게 높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 외국 역학연구에 따르면 수면무호흡증은 목이 짧고 굵은 사람에게 나타나는데, 남자가 여자보다 목도 굵고 목안에 지방도 많아, 기도가 좁아져 상대적으로 수면무호흡증이 많다고 보고한다.
- 갱년기에 여성발병율 갑자기 상승
갱년기에 이르면 수면 무호흡증의 남녀 발병율은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른다. 정교수는 “보통 여성호르몬은 숨을 활발하게 쉬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하는데,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여성호르몬 분비가 감소하면 호흡 기능이 떨어지면서 수면중 코골이 증세가 심하게 나타나게 된다”고 말했다. 처녀적엔 코를 골지 않다, 아줌마가 되면 코를 고는 이유다.
이외에도 중년에 접어들면서 여성의 몸은 노화하고 비만해지는데, 이 때문에 조직탄력도가 떨어지면서 마치 오래 쓴 주스 빨대의 허리가 꺾이듯, 여성들의 상기도조직도 탄력을 잃고 약화돼 수면무호흡증이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단순 코골이는 수면장애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지만, 함께 자는 배우자를 괴롭힐수 있고, 또 코골이가 심할 경우 수면무호흡증까지 동반될 수 있다.
- 불면증의 진단과 치료
이처럼 불면증을 일으키는 원인은 다양하므로 치료의 첫걸음은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면다원검사가 필수적이다. 수면다원검사는 8시간동안 환자를 재우면서 뇌파 안구운동 근전도 호흡 코골이 심전도 팔다리근전도등을 측정, 수면장애의 원인과 정도를 측정하는 진단법이다. 정교수는 “흔히 열나면 해열제 먹는 식으로 불면증에 수면제를 남용하면 큰 코 다친다”면서 “특히 수면무호흡증 환자가 수면제를 복용하게 되면 심각한 후유증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수면무호흡증 환자는 상기도 양압술(수면중에 압력이 높은 공기를 코를 통해 기도에 불어넣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 치료법이다.
송영주 의학전문기자 yjsong@hk.co.kr
■ 야근으로 인한 불면증 이렇게 해결하라
병원 편의점 공장 호텔 등 24시간 돌아가는 산업이 늘면서 야간근무자들이 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이들 중 70%는 야간 근무로 인한 불면증을 호소한다. 정교수는 “이들은 잠을 쫓기 위해 담배와 커피를 하고 퇴근 후엔 잠이 들기 위해 술을 마시는 데 이런 일이 하루이틀 쌓이다 보면 만성적인 건강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수면장애로 인한 건강부작용을 조금이라도 덜려면 교대근무일정을 시간생물학적 특성에 맞게 짜야 한다. 예를 들면 교대근무표를 짤 때 시계 반대방향보다는 시계 방향(낮- 저녁- 밤근무순)으로 순환되도록 하는 것. 또 매주 교대근무시간을 바꾸는 것보다는 최소 3주정도는 같은 시간대에 근무하는 게 좋고, 밤근무 작업장의 조명은 조도(2,500룩스)를 대낮처럼 밝게 유지하는 게 좋다. 야간 근무 전에는 두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며, 야근을 끝내고 귀가할 때에는 가능한 색안경을 써 햇빛을 차단하는 게 바람직하다.
■ 불면증 치료제 올바로 쓰는 법
사람들은 불면증이 있으면 십중팔구 수면제나 진정제를 먹는다. 이것은 마치 열이 있으면 해열제를 먹는 행위와 같은데 상당히 합리적인 선택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불면증은 여러 원인에 의해 나타나는 증상이므로 열이 나는 원인을 찾아야 제대로 된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불면증에서도 원인을 찾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만성불면증에서는 수면다원검사를 하면 불면증의 신체적 원인까지도 객관적으로 밝혀낼 수 있다. 참고로 코골이가 심한 불면증에서는 호흡을 저해할 수 있는 진정제 투여는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갑자기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잠을 못 자게 되어서 도저히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이면 수면제를 잠시 복용할 수 있다. 길어도 이주일 이상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약에 의존할 확률이 늘어나기 때문에 최소량을 써야 한다. 수면제나 진정제를 복용하다가 불면증이 해소된 것 같아 약을 갑자기 끊으면 ‘반동성 불면증’이 나타난다. 불면증이 심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놀랄 필요는 없으며 단지 약의 금단증상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불면증 치료에서 습관성이 없는 약물을 수면제 대용으로 쓰는 것이 오히려 보편적인 치료법이다. 항우울제 중에는 졸리는 작용이 있는 약물이 있는데 이러한 약물을 아주 소량 쓸 수 있다. 이때 알고 있어야 할 것은 항우울제는 수면제처럼 ‘달콤하게’ 잠을 유도하지는 않고 다소 은근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우울증이 있어서 불면증상이 나타났다면 항우울제를 본격적으로 충분한 기간동안 제 용량을 써야 한다. 그렇게 하면 불면증도 좋아지고 우울증도 좋아져서 일석이조가 된다.
/정도언 서울대의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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