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때만 되면 누가 자신을 지지한다고 아전인수식 주장을 하고 당사자측은 이를 부인하는 모습은 미국이라고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재선가도에 빨간 불이 켜진 조지 W 부시 대통령측이 국민의 애도속에 세상을 떠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후광을 업으려다 유족들의 반격을 자초했다. 부시측은 자신이 레이건의 적자 (嫡子)라며 추모분위기를 타려 했으나, 레이건가는 이를 공개리에 비난해 버렸다. 부시측은 북한과 이라크 등을 겨냥한 '악의 축' 발언이 레이건이 소련 등을 지칭한 '악의 제국'과 닮았고, 감세 등의 경제정책도 레이건 행정부의 것을 계승한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레이건의 아들 론 레이건은 장례식이 끝난 뒤 "부시 대통령이 조사에서 자신이 아버지(레이건)와 매우 닮았음을 보여주려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론은 장례식 헌사에서 "아버지는 매우 신앙이 깊은 분이었지만 정치인들처럼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는 치명적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부시에 직격탄을 퍼 부었다. 이 장면은 TV로 생중계됐으며 3,500만 미국인이 지켜 보았다. 론의 헌사에 대해 부시 진영이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했다. 론은 아버지가 사망하기전에도 온라인 잡지 인터뷰 등에서 "부시측은 아버지를 말할 자격이 없다"면서 "그들은 지나치게 공격적이며 비밀스럽고 부패했다"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레이건의 미망인 낸시 여사도 부시가 레이건의 적자라는 주장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 같은 공화당 소속일 뿐더러 레이건 대통령 아래서 부시의 아버지가 부통령까지 지냈는데 두 가문이 이처럼 틀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 분야에 정통한 인사들은 부시 대통령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제동이 결정적이라고 말한다. 레이건이 알츠하이머병으로 투병생활을 하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본 유족들은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치료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아래 부시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부시는 윤리적 이유로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레이건가는 결코 이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 하지만 대통령직을 주고 받은 사이인 레이건가와 부시가의 감정대립이 줄기세포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레이건과 부시의 근본적인 차이가 더 큰 요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지닌다. 레이건은 합리적 실용주의자였지만 부시는 감정적 이념주의자이고, 레이건이 주변을 아우르는 통합형 지도자였다면 부시는 싸움을 서슴지 않는 분열형 지도자 라는 것이다. 레이건가의 부시와의 선긋기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병규 논설위원 veroic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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