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간암클리닉이 개소 1주년을 기념해 12일 주최한 국제 간암심포지엄. 한ㆍ중ㆍ일 3국과 캐나다 스페인 등이 참가한 이 심포지엄을 주관한 한광협 교수는 적잖이 놀랐다. 암 치료라면 서구에서 검증된 치료법을 한국 환자에게 적용하는 것이 흔한데, 반대로 국내에서 개발한 치료법을 외국에서 따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간 동맥에 약을 넣어 암세포를 괴사시키는 ‘간 동맥 색전술’에 방사선치료를 결합한 치료법이 한 예다. 캐나다 토론토대와 중국 푸동대에서도 이러한 병합요법이 시도되고 있었다. 간에 방사선을 쪼이면 간이 모두 상한다는 인식을 뒤집고 방사선치료를 도입한 것이 세브란스병원 간암치료팀의 한광협(내과) 교수와 부인인 성진실(방사선종양학과) 교수였다. 또 미국에선 간암 부위에 직접 주사로 방사성 동위원소를 주입하는 치료에 대한 임상시험이 진행중인데, 방사성 동위원소인 홀뮴-166을 직접 주입하는 치료법은 진단방사선과 이종태 교수가 처음 시도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간암 치료에서 앞서가는 것은 그만큼 국내 환자가 많고 서구에 따를만한 본보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많은 암 치료에선 수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인데 반해 간암은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재발하는 경우가 많아 다른 여러가지 복합적인 치료법을 강구할 필요성이 높죠. 이런 면에서 내과, 외과, 진단방사선과, 방사선종양학과 등이 격의 없이 치료법을 토론하고 결정하는 내밀한 팀워크가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련 과 교수들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30분 모임을 갖는다. 환자 증례를 들고 어떤 치료법이 가장 효과적일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다. “의사들은 자신의 경험에 의해 제한된 치료법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팀은 솔직한 토론과 열린 사고로 접근합니다. 간암 치료는 어떤 것도 완벽하지 못하다는 전제가 출발점이지요.”
사실 이 같은 커뮤니케이션과 협진의 효과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준 예가 한 교수 부부다. 함께 출퇴근하면서 간의 특성과 방사선의 특성을 공유하게 된 이들이 간암에도 방사선치료를 도입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40대 남성에게 간질환은 가장 위협적인 사망원인이다(50대부터는 뇌졸중이 첫번째 사망원인이다), 즉 간 질환은 일찍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해 40대면 벌써 생명을 앗아간다. 간암의 발병율이 높은 이유는 70%가 B형 간염 때문이고, 나머지가 C형 간염과 알코올이다.
그런데 ‘침묵의 장기’라는 말도 있듯이 간은 심각하게 악화할 때까지 증상이 없어 조기진단이 어렵고, 진단 순간 남은 인생이 수 개월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종양의 크기가 3㎝ 이하일 때 발견되면 해볼만한 치료의 폭이 넓다. 연세대 통계에 따르면 1기로 진단된 간암환자의 5년 생존율이 39.5%이 반면 4기인 경우 4.6%에 불과하다.
따라서 간암을 어떻게 조기진단하느냐는 것이 관건이다. 12일 심포지엄에서도 이것이 중요한 이슈였는데 캐나다 토론토대 모리스 셔먼 교수는 “혈액검사는 조기진단 선별검사로서 의미가 없고 오히려 복부초음파 검사를 자주 하는 것이 낫다”고 발표했다. AFP라는 종양표시자를 이용한 혈액검사는 환자 3명 중 2명을 놓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값싼 혈액검사를 놔두고 보험도 안 되는 초음파검사만 고집하긴 어려운 점이 있다”며 “AFP 외에 PIVKA-Ⅱ라는 종양표시자 검사를 곁들여 진단율을 높이는 게 좋으며, 초음파검사는 얼마나 꼼꼼히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초음파검사는 깜깜한 방에 손전등을 비춰 공을 찾아내는 것과 같아 숙련된 의사가 면밀히 검사해야만 제대로 된 진단이 가능하다. 40대 이상이면서 만성간염이 있거나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6~12개월마다 정기검사를 받도록 권장된다.
암 크기가 3㎝ 이하로 1,2개 정도라면 수술로 가장 확실하게 제거할 수 있고 이밖에 고주파 알코올 홀뮴 등으로 수술하지 않고 암을 괴사시키는 방법이 많다. 하지만 암 크기가 3㎝가 넘거나 여러 개가 퍼져 있다면 수술이 어려워 ‘간 동맥 색전술’이 많이 적용된다. 특히 한 개만 큰 경우 방사선치료를 병행하는 게 효과적이다.
“전염된다는 이유로 유난히 간염 환자들이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보호받지 못하는 것을 볼 때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간염에서 간경변으로 진행되는 것만 막아도 혈당을 관리하면서 살 듯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간수치가 높아지지 않도록 간염을 관리하고, 술을 끊는 것은 가장 중요한 간암 예방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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