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프랑스 여성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예순아홉 번째 생일이다. 1935년 6월21일 남프랑스 카자르크라는 곳에서 태어난 사강은 19세의 소르본대학 학생이었던 1954년 장편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하며 파리 문단의 스타로 떠올랐다. 세실이라는 17세 소녀가 홀아비인 아버지의 애인에게 느끼는 미묘한 감정을 씁쓸하면서도 달콤하게 그려낸 이 소설은 그 뒤 수많은 언어로 옮겨져 사강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겼다.사강은 고답적인 문학비평가들로부터 그리 후한 점수를 받지는 못했지만, 생존하는 프랑스어권 작가들 가운데 가장 많은 독자를 거느린 이른바 베스트셀러 소설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슬픔이여 안녕' 이후에도 그는 '어떤 미소'(1956), '한 달 뒤 한 해 뒤'(1957), '브람스를 좋아하세요?'(1959), '신기한 구름'(1961), '흐트러진 침대'(1977) 등의 소설을 잇따라 발표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가 설령 대중소설가라 할지라도, 그의 작품들이 수행해 온 남녀 사이의 섬세한 심리 묘사는 일급 심리 소설들의 고전적 장면에 그리 뒤쳐지지 않는다. 사강은 희곡에도 손을 대 '스웨덴의 성'(1960), '바이올린은 때때로'(1961) 같은 작품들을 무대에 올렸고, 샹송 가사와 발레 각본도 썼다.
50대 이후 사강은 마약 복용 혐의로 몇 차례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고, 2002년에는 조세포탈죄로 금고 1년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기도 했다. '자유주의' 문필가로서, 사강은 개인의 마약 복용 여부에 국가 권력이 간여하는 것을 지금도 반대하고 있다. 1995년 코카인 복용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뒤 그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유명한 발언을 남겼다. 자유의 한계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는 사람들에게 이 발언은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
고종석/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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