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 시절엔 책을 읽다가 덮어둔 다음, 이틀이나 삼일 후에도 그 책을 어디 만큼 읽다가 덮어두었는지 금방 그 부분을 찾아낸다. 아무 표시를 하지 않아도 그 페이지 찾아 읽은 줄과 읽지 않은 줄까지도 구분해낸다.그 시절 마흔이 넘은 국어선생님으로부터 "이젠 책을 읽다가 덮어두면 어디까지 읽었는지 몰라 이곳 저곳을 뒤적인다"는 말을 듣고 우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저러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다.
그런데 요즘 나의 독서가 그렇다. 어떤 책은 그 책을 읽다가 어디에 두었는지조차 잊어버리기도 한다. 또 어떤 책은 내용이 좀 익숙하다 싶어 되짚어보면 얼마 전에 읽은 책을 처음처럼 다시 읽는 중이기도 하다.
독서에서만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제 생각했던 것, 또 어제 한 약속, 이런 걸 깜빡깜빡 잊어버릴 때가 있다. 예전의 그 선생님은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올 걸 예상하시고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이가 들면 손이 부지런한 사람의 기억력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때는 그 뜻을 잘 몰랐는데, 나중에 나이가 들수록 메모하는 습관을 잘 들이라는 뜻이었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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