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불완전한 정전협정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불완전한 정전협정

입력
2004.06.19 00:00
0 0

2002년 서해 상에서 남북의 해군함정 사이에 교전이 일어나 젊은이들이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 1960년대에는 동해에서 남한 어선들이 북에 끌려간 수많은 사건들이 신문을 장식했다. 군사분계선을 넘었다는 이유로 북에 끌려간 어선과 어부들은 동해와 서해를 가리지 않고 너무나 많았다.비극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북에 끌려간 어부들은 회유공작을 받았고, 일부 어부들은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 남았다. 영원한 이산가족이 된 것이다. 더 비극적인 사실은 남한으로 돌아온 어부들에게 닥친 불행이었다. 어떤 이는 술자리에서 농담 삼아 "북한도 그렇게 못 사는 게 아니더라"고 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고, 때로는 간첩으로 몰렸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의 지도에 보면 군사분계선이 육지에서 끝나고 해상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전후 유엔군이 점령한 서해 5도와 북한 측의 복잡한 옹진반도 해안선은 군사분계선을 긋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천연 조건을 가지고 있다. 또한 당시 2년을 끌었던 정전협상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해상 경계선을 정확히 규정하지 않은 채 협정을 체결토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서해상의 군사분계선은 58년 유엔군에 의하여 선포된 것이었고, 북한은 이에 대항하여 99년 소위 '5개 섬 통항질서'라는 것을 일방적으로 발표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2004년 6월 14일은 역사에 길이 남을 날이다. 비무장지대의 상호비방 방송이 사라졌고, 서해 상에서 남북의 해군 함정이 교신을 통하여 서로가 적대적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여기에 더하여 앞으로 남북의 해군이 정보공유를 통해 공동작전까지 펼칠 것이라고 한다. 이제 더 이상 남과 북 해군의 젊은이들이, 선량한 어민들이 냉전의 지뢰를 밟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수 없다. 남과 북 사이에는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 반전도 심하다. 94년 북한 핵문제로 한참 시끄러울 때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전쟁 시나리오를 세웠다. 그러나 곧이어 카터의 북한 방문과 남북정상회담의 소식이 들렸다. 그런데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소위 '조문파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후 남과 북은 수년 동안 다시 문고리를 닫아 버렸다. 도대체 남북 관계에는 '깜빡이'가 없다.

남북 관계는 한국전쟁 이후 조금씩 개선되어 왔다. 그러나 남북 사이에 있는 불완전한 정전협정으로 인해 언제 어떻게 상황이 반전될 지 아무도 모른다. 그 불완전성은 해상 군사분계선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전협정이 규정하고 있는 정치회담은 이미 54년 제네바에서 종을 쳤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신무기의 반입을 막기 위하여 남북의 주요 항구에 중립국 군사감시반을 설치하는 조항은 55년 남북이 각기 군사감시반을 내쫓으면서 무의미해졌다. 57년 유엔군 사령부는 남북한에서 무기 증강을 막기 위해 설정된 정전협정 13조 (라)항이 무효임을 선언하였다.

정전협상 상의 이같이 중요한 조항들이 무효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51년간 한반도에서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이러한 정전협정 하에서는 서해교전보다 더한 상황이 발생해도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

오랫동안 장수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타임머신'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타임머신은 현실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불과 수 십년 전 우리 사회의 에피소드들을 보여준다. 만약 이 프로그램에서 20년 후 소위 '납북 어부 간첩사건'이나 남과 북이 비무장지대에서 틀었던 상호비방 방송의 내용을 소재로 한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느낄까?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하면서 마치 코미디를 보듯 할까? 불완전한 정전협정으로 인하여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 20년 후에도 타임머신의 소재가 될 수 없을까 두렵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