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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월가의 전설 세계를 가다/짐 로저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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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월가의 전설 세계를 가다/짐 로저스 지음

입력
2004.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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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전설 세계를 가다짐 로저스 지음·박정태 옮김

굿모닝북스 발행·2만5,000원

1,000㏄짜리 BMW 오토바이. 22개월 동안 세계 6대륙 51개 국에 걸쳐 달린 거리만 10만4,000㎞. 신나는 여행일까? 글쎄. 지금만큼 세계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1990년에, 제대로 길도 나 있지 않은 시베리아를 동에서 서로 횡단하는 여정까지 포함하고 있다면 조금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물론 돈과 여유가 있어야 부려볼 수 있는 호사지만, 오토바이 한 대에 몸을 의탁해 세계를 누비는 데는 대단한 용기도 필요하다. 짐 로저스(62)에 붙은 '월가의 전설'이니 '국제금융시장의 인디애나 존스'니 하는 수사가 허무맹랑하게만 들리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짐 로저스는 미국의 투자 전문가다. 예일대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옥스퍼드대에 장학생으로 유학한 뒤 불과 27세에 조지 소로스와 함께 역외투자 전문인 퀀텀 펀드를 창업했다.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감각, 일에 대한 대단한 몰입으로 그는 12년 동안 누적 수익률 3,365%의 신화를 달성했다. 하지만 소로스가 거물 펀드매니저로 남는 길을 택한 반면 로저스는 600달러에서 1,400만 달러로 불어난 자신의 몫을 챙겨 38세에 미련 없이 그 바닥을 떴다.

이 책은 로저스가 오토바이로 세계를 누비고 쓴 독특한 여행기이다. 워낙 오토바이를 즐겼고, 여행에도 이골이 나 있었지만 1990년 3월부터 20대 초반의 여자 친구와 함께 떠난 이 여행은 정말 무모한 것이었다. 소련과 중국이 공산주의의 구태를 벗어나려고 막 몸부림치는 중이어서, 낯선 미국인이 그것도 오토바이를 타고 길을 지나는 모습은 보통 사람 같아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일랜드에서 시작해 빈―이스탄불―앙카라―타슈켄트―베이징―도쿄―이르쿠츠크―노보시비르스크―모스크바 여행을 마친 뒤 아프리카를 종단하는 길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외지인들 수십 명이 죽어 나간다는 사하라 사막을 건너야 하고, 내전의 한 가운데를 질러 가야 했다. 호주와 뉴질랜드를 거쳐 정치 경제 상황이 불안한 남미를 누비는 길에서 느닷없이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행 초반부터 포기할 마음이 굴뚝 같았던 친구를 설득해가며 그는 알래스카를 마지막으로 여행을 무사히 끝냈다.

이 책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의 피폐한 모습이나 중국의 이색적인 풍물, 아프리카와 남미 사람의 생활을 보여주는 여행기라면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로저스는 세계 각국의 형편이나 유람의 희로애락을 풀어놓자고 이 책을 쓰지는 않았다. 도착한 나라의 산하와 인심을 살피는 것 못지 않게 그는 그곳의 경제상황을 분석했고 투자의 기회를 엿보았다.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재무장관, 노동조합 대표, 기업인도 적극적으로 만났다. 10여 년 전 상황이긴 하지만 그는 이 여행에서 지는 시장과 뜨는 시장을 판단했다.

대표적으로 뜨는 시장이며 그래서 로저스가 투자를 결심한 나라는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뉴질랜드 등이다. 특히 중국에 대한 묘사는 인상적이다. '중국인들에게는 신개척지도 없고, 시베리아와 같은 버려진 땅도 없고, 식민지도 없다. 갈 데가 더 이상 없으니 가진 것을 최대한 이용해야 했다. 부지런함과 질서 때문에 중국인들이 다음 세기에는 어느 민족보다도 더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아가 그는 '일본은 잊어라. 자녀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라'고 주문했다.

600쪽이 넘는 여행기에서 로저스는 한결 같이 정부의 과도한 경제 개입과 규제를 망국의 첩경이라고 주장한다. 소련이나 중국의 공산주의건 유럽의 사회민주주의건, 아니면 아프리카나 남미 저개발국의 일당 독재건 모든 '국가주의'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를 살리는 것은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고, 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도록 놓아두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오토바이 세계일주 만큼이나 자유분방하고 무모하지만 그 때문에 책은 일관성과 생동감을 얻었다. 오토바이 여행길을 따라가면서 세계 경제를 엿볼 특별한 기회를 주는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IMF직후 한국 체험 담은 두번째 여행기도 번역중

짐 로저스는 1998년 12월에 샛노란 벤츠 승용차를 타고 두번째 세계여행에 나섰다. 외환위기의 급한 불을 끈 직후인 99년 5월 18일부터 보름 가까이 짐 로저스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의 이야기가 지금 국내 번역 중인 그의 두번째 세계 여행기 '어드벤처 캐피털리스트(Adventure Capitalist)'에 담겨 있다. 그 중 몇 구절.

'한국 경제는 다른 이웃 나라들에 비해 좀 더 건전했던 게 사실이다. … 하지만 서구 투자가에게는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나 똑같다. 그들은 모두 그곳에 있고, 똑같이 황인종이다. … 모든 투자 거품은 똑같다. 1997년에도 이와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다.'

'한국의 젊은 부부들은 갈수록 자녀를 덜 갖고 있다. 한국 여성들은 전체 노동력의 40%를 차지하며 앞으로 여성의 역할은 더 커질 것이다. 나는 한국에 투자하지 않기로 했는데, 예외적으로 피임약을 생산하는 제약회사 3곳에는 투자했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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