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풍은 공항에서부터 감지됐다. 닛케이유통신문이 올해 상반기 히트상품 2위로 뽑은 '겨울연가'의 배용준에 대한 열풍은 결코 '아줌마들에 의한 예외적 현상'이 아니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일본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16일 강제규 감독과 주연배우 장동건 원빈 공형진이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로비는 환성에 묻혔다.경찰 통제선도 소용없었다. 2,000여명의 팬들은 '장동건' '원빈'을 쓴 플래카드를 흔들며 그들의 이름을 외쳤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드라마나 영화가 상영되고 난 뒤, 그 주인공들에 관심을 갖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작품 그 자체에 대한 열기였다.
열풍은 이날 오후 열린 기자회견장에서도 쉽게 확인됐다. 500명 가까운 취재기자와 300여명의 카메라기자들이 몰려들어 질문을 쏟아냈다. "한국에서의 흥행성공의 이유"에서부터 "영화의 메시지"까지 감독, 배우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그들이 한결같이 한 말은 "일본에서도 큰 성공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이 말이 인사치레가 아님은 17일 저녁 도쿄 시내 긴자에 있는 국제포럼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금방 확인됐다. 2시간 전부터 장동건 원빈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극장에 들어온 6,000명의 팬들은 한국말로 이름을 부르며 환호, 영화 주제가를 부른 가수 보아와 함께 무대인사를 하는 감독과 배우들을 흥분시켰다.
국제포럼에서 한국영화가 시사회를 가진 것은 처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아니면 어림도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태극기…'를 수입, 배급하는 일본 UIP 폴 다카키 사장은 강제규를 스필버그, 장동건을 톰 크루즈와 비교했다. 그리고 "단순히 한국영화가 아니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같은 급"이라고 했다.
실제 26일 개봉하는 '태극기…'는 그만한 대접과 관심을 받고 있다. UIP는 할리우드 대작에 버금가는 8억엔(약 90억)의 마케팅비에 일본 전역에 300여개의 스크린을 잡았다. 아시아 영화사상 최다 기록인 중국 장이모 감독의 '영웅'(250개)보다 많은 숫자다. 예매도 개봉 3주 전에 벌써 4,500장이나 돼 650개 스크린을 잡고 3주차에 접어든 '투모로우'를 앞질렀다. 이런 반응이라면 '쉬리'의 130만명은 물론 아시아영화 최고 흥행 기록인 '영웅'의 300만명 기록도 깰 것이라 게 일본 영화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태극기…' 가 개봉하면 초여름 일본 극장가는 한국영화가 장악하는 셈. 5월 22일 개봉한 배용준의 '스캔들'이 120개 스크린에서 여전히 상영하며 40만명을 넘어섰고, 이어 5일 개봉한 '실미도' 역시 예상보다 흥행(18일 현재 20만명 정도)은 크게 뒤지지만 그래도 200여개 스크린에서 상영중이다. 여기에 '태극기…'까지 합치면 일본 전체 2,500개 스크린의 20%를 한국영화가 점령하게 된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다.
/도쿄=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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