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들이 국회의 '물'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참으로 무서운 아이들이다." 한나라당의 한 3선 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자신의 초선 시절을 반추하며 17대 국회 초선들의 거침없는 언사와 행보에 혀를 내둘렀다.이 의원이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의원총회나 각종 모임에서이다. 회의가 열릴 때마다 초선들이 마이크 잡기 경쟁에 나서고, 중진들이 뒤로 떠밀리는 것이 일상사가 됐다. 5월12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한나라당 당선자 총회. 관례를 깨고 회의 시작과 동시에 한 초선 당선자가 첫번째 마이크를 얼른 잡았다. 곧 이어 발언을 하던 다른 초선 당선자는 한 중진이 "의제와 다른 이야기 아닌가요"라고 지적하자 "내가 말하는 데 왜 그러세요. 가만히 계세요"라며 언성을 높였다. 예전에는 중진들이 대거 참석하는 자리에서 초선들은 그냥 얘기를 묵묵히 듣고 있다가 나중에 자기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개진하는 게 일반적 이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변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이라크 추가파병과 총리지명 문제 등 각종 현안마다 제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는 초선 의원 108명의 행보를 빗대, '108번뇌'라는 말까지 회자됐고,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이 5월31일 열린우리당 의원과의 청와대 만찬에서 초선들을 향해 "튄다는 소리 들으면 손해"라며 자제를 당부했다. 중진들은 또 여야 내부의 정책·당론 혼선과 정국 혼란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이 같은 초선들의 '독불장군식' 행보라고 보고 있다. 오랜 대의민주주의 전통을 가진 선진각국에서도 의회에서의 질서는 선수를 통해 유지된다. 특히 초선 의원과 재선급 이상이 받는 대우의 차이는 크다.
그러나 17대 초선 의원들은 이를 수긍하지 않는다.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은 "국회의원 각자는 헌법기관으로서 무게가 같기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3선의 홍준표 의원은 "계파·보스정치를 탈피하는 과도기적 현상"이라면서도 "사회에서 통용되는 예의를 범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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