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학교 1스티븐 로 글·하상용 옮김
창비 발행·1만원
철학은 2,000년 넘게 인류가 고민하고 논쟁해온 학문이다. 하지만 왠지 뜬 구름 잡는 이야기를 일삼는 골치 아픈 분야이면서, 몰라도 살아가는 데 별로 불편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철학학교1'은 이러한 통념을 여지 없이 무너뜨리는 철학 입문서이다.
이 책은 구성과 접근 방식부터 톡톡 튄다. 다루는 주제는 '세계는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동성애는 무엇이 잘못인가' '도둑맞은 두뇌' '시간여행은 가능할까' 등 12개 항목. 구성도 친구나 동료 또는 부부 간의 대화, 모의 법정, 신과 신자 사이의 논쟁, 로봇과 주인의 설전, 외계인과 지구인의 논리싸움 등으로 진행된다.
예컨대 우주의 기원에 대한 문제는 신학자와 물리학자 사이의 토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보는 신학자는 120억년 전에 공간, 에너지, 물질, 시간이 시작된 빅뱅은 신이 존재하기에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아무런 이유없이 갑자기 사물이 존재할 수 없듯이, 세계가 생겨난 것도 다 신의 뜻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물리학자는 신의 존재를 가정해도, 그 신을 만든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는 '원인논증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신학자가 신의 존재가 예외라고 말하자, 물리학자는 신학자가 모든 것에 원인이 있다는 원칙에 예외를 만들고 있고, 그렇다면 세계의 기원을 그 원칙의 예외로 삼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한다. 이처럼 치밀한 가상 논쟁 안에는 철학, 과학, 신학의 주요 쟁점과 논리가 펼쳐진다.
이밖에도 동성애 문제, 예술의 정의, 창조론의 과학적 근거, 맞춤아기의 윤리 등에 대한 논증과 토론을 따라가다 보면 철학적 사유가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를 새삼 알 수 있다. 또 주어진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주장과 근거 제시, 그 근거가 올바로 뒷받침하는지를 추적함으로써 비판적·체계적 사고능력을 기를 수 있다. 이러한 훈련은 결국 자기 주장 전개 방식을 익히고, 나아가 교활한 자동차 판매상, 사이비 종교단체 등의 농간에 빠지지 않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철학은 생활에 밀접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고교생들의 대입논술준비도서로서 뿐만 아니라 일반 교양서로써도 권할 만하다. /최진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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