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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우산이 귀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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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우산이 귀했던 시절

입력
2004.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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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집안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는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우리가 일어나기 전에 할아버지는 이미 앞골 논과 건넛골 전답을 둘러보시고 돌아온다. 보통 때는 할아버지의 그런 흔적이 표나지 않아도 비 오는 날은 사랑쪽 마루에 놓여 있는 젖은 삿갓이 그것을 말해준다.집안에는 늘 우산이 부족하다. 시내의 중학교에 다니는 두 형은 언제나 집안에서 제일 좋은 우산을 들고 학교에 간다. 검정 헝겊 우산이다. 그 다음 괜찮은 우산은 여동생 차지다. 나는 단 한번도 동생은 왜 좋은 우산을 주고 나는 안 주냐고 따지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나보다 여동생이 그 우산을 써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내게 삿갓을 쓰고 학교에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학교에 삿갓을 쓰고 오는 아이는 없다. 삿갓은 어른들이 논밭을 둘러볼 때 쓰는 것이지 학교에 쓰고 가는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웃음거리다. 그걸 쓰고 가느니 차라리 비를 맞고 가는 게 낫다.

비오는 날 마당은 언제나 우산 전쟁이다. 결국 내가 쓰고 가는 것은 비료포대로 만든 우비다. 그 시절엔 왜 그렇게 우산 하나도 귀하기만 했는지.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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