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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수도 국민투표 논란

입력
2004.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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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정수도 건설을 둘러싼 국민투표 논란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가 국민투표 실시를 요구한 가운데,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 1년 이내에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서 국민투표로 최종 결정하겠다"고 공약했던 사실이 17일 드러났기 때문이다.청와대는 이날 우선 "이 시점에서 함부로 거론할 사안이 아니다"고 차단막을 쳤다. "이미 국회에서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안이 통과됐고, 대선 공약이었던 이에 대해서는 16대 대선과 17대 총선으로 민의가 확인됐다"며 강행의지를 밝힌 것이다. 대선 당시 노 대통령 발언은 "국회에서 저지될 경우의 차선을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민투표 불가'가 아니라 '거론하지 않겠다'에 그친 신중한 접근은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노 대통령이 15일 국무회의에서 "정부의 명운과 진퇴를 걸고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만큼 국민여론이 급격히 반대쪽으로 기운 최악의 경우, 국민투표 실시로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윤태영 대변인은 이날 "국민투표를 '한다, 안 한다'의 문제가 아니다"며 "국회에서 이미 합의가 된 것인데 또다시 국민투표를 하면 얼마나 소모적이겠느냐"고 주장했다. 이미 4곳의 신행정수도 후보지를 발표했고 이전될 국가·공공기관들의 선정도 속속 되어가는 마당에 원점에서 새로 시작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 계획이 무산될 경우 상호유기적 관계에 있는 국가균형발전, 수도권 동북아금융중심 추진도 유명무실화할 수 밖에 없어 참여정부의 전체 계획이 흐트러진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되고서도 지금 야당과 일부언론을 중심으로 논란이 불거진 것에 대해서는 "정치적 의도를 가진 공세"라는 노 대통령의 짙은 불신도 바탕에 깔려 있다. 신행정수도 건설이 헌법상 국민투표 조건인 '국가안위에 관한 정책'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애매해 또 다른 논쟁이 부담스러운 면도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이런 강행의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상황변화가 주시되고 있다. 윤 대변인이 이날 "여론몰이식이 아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며 토론하면 국민투표를 통과할 것"이라며 "부결될 것 같아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 것은 미묘하다. 물론 이미 합법적인 국회의 절차를 거친 상태에서 이를 뒤집고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하는 새로운 상황이란 가정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국민투표 부의안이 더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점 등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가는 데 대해 청와대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한 "딱 걸렸어" "盧대통령은 약속 지켜라"

한나라당은 17일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 약속을 이행하라"며 국민투표 공세에 집중했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지난 대선 전후 수 차례에 걸쳐 행정수도 이전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사실이 확인되자 "이제 대통령이 외통수에 걸렸다"며 기세를 올리는 분위기다.

한나라당은 그 동안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지난해 말 여야 합의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통과시켜준 '원죄'와 충청권 민심을 의식, 국민투표 실시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상임운영위에서 "국민적 합의와 재정 뒷받침 없이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김안제 신행정수도 추진위원장의 예상대로 다음 정권 때 백지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노 대통령은 (국민투표 실시 발언에 대해) 답변할 차례가 됐다"고 압박했다.

전여옥 대변인은 논평에서 "노 대통령은 대선후보 당시 방송연설을 다시 한번 보고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자신의 입으로 말한 국민투표를 대통령이 지키지 않는다면 앞으로 무슨 말을 한들 국민이 믿겠느냐"고 말했다. 박진 김정훈 의원 등 '푸른정책 연구모임' 의원 10명도 이날 모임을 갖고 행정수도 이전 전면 재검토와 국민투표 실시요구 방안을 당지도부에 공식 건의키로 했다.

박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행정수도 이전은 철저한 비용분석과 냉정한 평가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며 "국민적 합의를 거치기 위한 국민투표 실시 등 모든 방법을 열어놓고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대통령이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빌미 삼아 국민투표를 거부한다면 이는 견강부회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각종 여론조사 결과/ 65% 안팎 "국민투표 해야"

행정수도 이전 논란이 핫이슈로 떠오른 8일 이후 언론사와 여론조사 기관들이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투표 실시에 찬성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러나 행정수도 이전 자체에 대한 찬반 응답은 팽팽해 막상 국민투표가 실시될 경우 결과는 예측 불허인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조선일보와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 81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64.9%로, '안 해도 된다'는 대답(30.2%) 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지역별로는 수도권과 강원, 영남 권에선 국민투표 찬성 의견이 60∼70%인 반면, 충청권에선 반대가 65.9%였다. 호남권에선 찬반이 비슷했다.

내일신문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12, 1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 1,004명 중 68.1%가 '국민투표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필요 없다'는 응답은 29.5%였다. 한나라당 지지 층(찬성 85.2%)은 물론 우리당 지지 층의 56.9%도 국민투표 찬성의사를 밝혔다.

이와 함께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15일, 찬성 59.9%, 반대 36.5%), 한겨레신문―리서치플러스(12일, 찬성 64.7%, 반대 27.9%), MBC―코리아리서치(9일, 찬성 67.5%, 반대 29.5%) 조사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나타냈다.

반면 행정수도 이전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의견이 조선일보 46.2% 대 48%, 동아일보 41.1% 대 50.5%, 한겨레신문 40.1% 대 42.9%, MBC 45.6% 대 46.0% 등으로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 헌법 "국민투표 조항" 논란

헌법 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 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다수 학자들은 행정수도 이전이 '중요 정책'에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 고려대 장영수 교수는 "수도 이전 문제도 국민투표 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 "다만 국민투표 부의는 대통령의 권한이지 의무 사항이 아니므로 대통령에게 국민투표 실시를 강제적으로 요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국민투표법에 따르면 국민 투표 실시 18일 전까지 투표일과 국민투표안을 동시에 공고하면 된다.

만일 행정수도 이전 국민투표안에 대통령 진퇴에 관한 문제를 공식적으로 연계할 경우 위헌 가능성이 높다는 게 학자들의 견해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14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기각 결정문에서 "대통령이 재신임을 국민투표 형태로 묻고자 하는 것은 국민투표 부의권을 위헌적으로 행사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다만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면서 정치적으로 '진퇴'를 언급하는 행위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장영수 교수는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치면서 연설 등을 통해 진퇴 문제와 연계시킬 경우 위헌이냐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며 "정치적 언급으로 재신임과 연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위헌까지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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