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깊은 적막에 쌓여 있던 주위가 서서히 밝아오는군요. 모처럼 아버지께 편지를 씁니다. 당신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항상 제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당신이 임종을 앞두고 "항상 너를 지켜보고 있을 테니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라"라고 당부했기 때문인가 봅니다. 저는 당신이 하늘나라에서 항상 저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께 편지를 쓰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방금 우연히 인터넷에서 만화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장애를 가진 여성이 신체 건강한 남자와 사랑을 가꾸어가는 내용인데 당신의 연애 시절 이야기와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세상의 편견을 극복하고 사랑을 만들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너무 놀라 작가에게 이메일도 보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서 고맙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연애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았다는 감상을 전했습니다.
어머니는 청각 장애인이었습니다. 마음이 곱고 얼굴도 예뻤지만 장애인을 백안시하는 세상의 편견을 감내해야 했지요. 어쩌면 어머니는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어머니를 알아보고 평생의 반려자로 백년가약을 맺었지요. 어머니는 처음에는 당신이 다가오자 주저했지만 결국 진심을 확인하고 마음을 열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회상에 따르면 당신은 로맨티스트였다고 합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 보는 성격의 소유자였고, 항상 어머니의 장점을 발견하고 이를 북돋워주었다고 합니다. 당신의 넉넉한 가슴으로 주위의 편견을 감싸 안았습니다. 어머니로부터 당신의 연애 시절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 연애 시절의 아버지가 그랬구나"하는 감탄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 때로는 우리 가족을 남겨두고 훌쩍 세상을 떠난 당신이 야속하게 느껴집니다. 코흘리개이던 저도 이제 다 자라서 인생을 개척해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겉보기만큼 만만치 않더군요. 감내하기 힘든 어려운 일을 겪다 보면 "당신이 살아계셨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런저런 걱정에 이렇게 밤을 하얗게 지새우다가 당신께 편지를 쓰는 겁니다. 아버지, 하늘나라에서 저희 가족을 지켜보고 계시지요? 정말 보고 싶습니다.
char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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