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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해빙 연평도를 가다/ '꽃게 만선' 부푼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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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해빙 연평도를 가다/ '꽃게 만선' 부푼꿈

입력
2004.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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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만 던지면 꽃게가 줄줄 달려 올라오는 '돈 바다'인데 50년 동안 서로 총질할까봐 남북한 죄다 고기를 못 잡게 했으니 정말 미친 짓이었어. 2년 전 서해교전 나고서는 통제가 더 심해져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들게 됐잖아.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남북의 군인들이 싸움하지 않겠다며 손잡았으니 마음 놓고 그물 들이게 된 우리 어부들이야 잔치 벌일 일이지."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의 우발충돌 방지를 위해 남북 군함이 역사적인 첫 무선교신을 한 지 이틀이 지난 16일 새벽 4시30분. 출어를 앞두고 부릉부릉 시동을 건 채 대낮처럼 불을 밝힌 꽃게잡이 배들로 빼곡한 대연평도 부두에서 고기잡이 준비를 하고있던 성도경(38)씨는 뱃사람 특유의 걸쭉한 목소리로 이렇게 사설을 늘어놓는다.

이 섬은 원래 부자 섬이었다. 한번 바다에 나가면 그 귀하다는 꽃게를 700∼800㎏씩 건져 올렸다. 꽃게잡이철 반년에 5억원을 버는 집도 많아 웬만한 서울 중산층 수준을 넘었다. 그러나 3∼4년 전부터 중국어선들이 하루 700척씩 벌떼처럼 몰려들면서 하루 종일 고생해도 20㎏이 고작이다. 한번 출어하는데 드는 기름값 40만원도 못 채우는 수준이다. 꽃게잡이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남북 간 빈번한 충돌로 출어통제구역이 계속 넓어지자 주민들은 속속 어업을 포기했다. 반면 북한과 가까워 꽃게잡이가 불가능한 연평도와 옹진반도 사이의 수역은 꽃게가 바글바글 모여들어 어민들은 이 수역을 '김일성 양식장'이라고 부른다.

꽃게가 지천인 해역을 눈앞에 두고 바로 바깥에서 헛그물질만 계속해야 했던 성씨는 빈 배로 돌아올 때마다 "부부싸움에 정신이 팔려 애들 밥 굶긴 꼴"이라며 신세를 한탄하곤 했다. 생활이 빠듯해지는 것도 모두 자기 탓이 아닌 것 같아 머리에는 불만을, 입에는 불평을 달고 살았다. 그러나 이날 출어하는 성씨의 입가에는 웃음이 배어나고 있었다. 그는 "머지않아 그 바다에 출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때 오시면 만선한 배로 돌아와 기자 양반께 꽃게 좀 대접해 드릴 테니 기다려 보슈"라며 오랜만에 희망을 얘기했다.

어민이 아닌 주민들도 들뜬 표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민들의 예상대로 조업 구역이 넓어지면 꽃게가 많이 잡히고, 꽃게가 많이 잡히면 관련 상인들은 물론, 구멍가게나 다방업주까지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사실 이 작은 섬마을 사람들에게 14일 남북 무선교신 소식은 해방 이후 전해진 가장 행복한 뉴스였다. 이 집 저 집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하루종일 같은 뉴스를 몇 번씩 보았지만 볼 때마다 감격스러웠다. 최동희(55)씨는 "그 동안 소주를 마시면 그렇게 썼는데 뉴스를 보면서 웃음을 안주 삼아 마시니 기분 정말 굿이더군"이라고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어민들의 걱정거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중국어선들이 영해 공해를 가리지 않고 눈이 촘촘한 저인망으로 마구잡이 쌍끌이 조업을 하는 바람에 꽃게 어장이 철저히 파괴된 상태여서 이제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아직 남북 군함이 함께 중국 어선의 불법어로를 막는 데까지는 합의하지 못했고 어장 확장도 어민들의 기대일 뿐 구체적인 통제해제 소식이 없어 어민들은 답답해 하고 있다.

/대연평도=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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