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9·11 진상 조사위원회/여객기 10대 납치 美전역 공격 계획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9·11 진상 조사위원회/여객기 10대 납치 美전역 공격 계획

입력
2004.06.18 00:00
0 0

9·11 테러 공격은 알 카에다가 구상한 '빅 플랜'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알 카에다의 테러 주모자들은 당초 납치한 비행기로 미 본토 동·서부 해안의 주요 건물을 타격하고, 동남아에서도 미 여객기를 공중 폭발하는 광대역 동시 공격을 통해 테러의 심리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구상을 가졌었다고 9·11 테러 조사위원회가 16일 밝혔다. 이 계획은 동시 실행의 난점과 내부 이견 등으로 수정을 거듭하면서 오마사 빈 라덴에 의해 뉴욕과 워싱턴 4곳의 목표물로 좁혀졌다는 게 조사위의 결론이다.

초기 구상

테러계획 입안자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KSM)의 초기 구상은 9·11 실제 상황보다 훨씬 파괴적이었다. 그는 총 10대의 여객기를 공중 납치, 미국 동부와 서부 일대를 동시 공격하려는 계획을 알 카에다 지도부에 제안했다. 공격 목표로는 백악관, 국방부를 비롯, 의사당과 연방수사국(FBI), 중앙정보국(CIA) 본부 건물과 핵 발전소, 캘리포니아와 워싱턴의 최고층 건물이 포함됐다. KSM은 지난해 3월 파키스탄에서 체포돼 그동안 미국에서 조사를 받아왔다.

초기 구상의 핵심은 그가 직접 몰 작정이었던 10번째 여객기에 있었다. KSM은 10번째 여객기에서 남자 승객을 모두 살해하고 공중에서 언론과 접촉, 미국 공항에 착륙한 뒤 미국의 중동 정책을 비난하는 연설을 하고 여성과 어린이들을 풀어주는 계획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알 카에다의 지도부는 이 계획의 실행에 미온적이었다. 규모가 너무 크고 복잡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빈 라덴은 이 계획을 승인하면서 KSM의 연설을 위한 납치 계획은 폐기하고 대신 그에게 4명의 조직원을 배속했다. 이들 중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 2명은 이미 미국에 잠입, 비자를 소지하고 있었으나 예멘 출신 2명은 비자가 거부됐다.

KSM은 예멘 출신 2명을 동남아 지역에서 태평양을 횡단하는 미국 여객기를 납치, 공중 폭발하는 '보진카 계획'에 활용하려 했다. 또 납치 비행기를 일본과 싱가포르, 한국 내 미 시설에 충돌하는 계획도 대안으로 검토했다. 2001년 1월 계획을 실행을 위한 사전 답사도 진행됐지만 같은 해 4, 5월께 빈 라덴은 동시 실행의 어려움을 이유로 동남아쪽 작전을 취소했다.

내부 이견

9·11 테러 계획은 처음부터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알 카에다 내부 이견으로 공격 직전까지 타격 장소가 정해지지 않을 정도로 혼선이 있었다. 빈 라덴은 4번째 여객기로 백악관을 공격하기를 원했고, 현장 실행을 주도한 모하마드 아타는 보안 수준이 낮은 의사당을 고집했다. 결국 아타는 빈 라덴의 지시를 수용했지만 의사당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당시 파키스탄 정부로부터 알 카에다와의 관계를 청산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의 지도자 모하마드 물라 오마르도 빈 라덴에게 미국을 공격하는 것에 대해 반대를 표명했다.

공격시기

빈 라덴은 당초 예멘에 정박한 미 전함 콜호에 대한 알 카에다의 자폭 테러 7달 뒤인 2001년 5월 12일을 미국 본토 공격일로 잡았다. 그 뒤 빈 라덴은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백악관을 방문할 예정이었던 2001년 6월 또는 7월 공격을 감행하려고 했으나 KSM은 조종을 맡은 조직원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반대했다. 최종 날짜가 정해진 것은 9·11로부터 불과 3주전. 미 국회가 개원하는 9월 11일을 D데이로 정한 인물은 아타였다.

"이라크 연계 증거 없다"

빈 라덴은 이라크 전 대통령 사담 후세인의 세속 정권을 반대했으며 한때 쿠르드족 거주 고원지대에 있는 반 사담 이슬람 교도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빈 라덴이 1994년 수단에 있을 때 이라크 고위 정보 관리들과 만나는 등 접촉이 있었고 그가 아프간으로 옮긴 뒤에도 그런 접촉이 있었다는 보고가 있다"며 "그러나 그 접촉으로 어떤 협력적 관계가 형성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테러범들은 9·11 실행에 총 40만∼50만 달러를 썼지만 자금 추적 결과 모두 KSM에게서 나온 것으로 드러났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명분없는 전쟁" 부시에 역풍

국제 테러조직 알 카에다가 저지른 9·11 테러에 이라크가 연루되지 않았다는 미국 9·11 테러 진상조사위원회의 중간 결론은 이라크전을 감행한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또다시 적지않은 상처를 입힐 것으로 보인다.

세계 주요 언론은 알 카에다가 당초 10대의 비행기를 납치하려 했다'는 등의 보고서 내용을 제목으로 뽑으면서 이로 인한 이라크전 명분이 큰 타격을 받게 됐다고 분석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16일 사설을 통해 "오사마 빈 라덴을 포함한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실재하고 있을 지 모를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에서 병력과 정보력을 이라크전에 돌림으로써 테러와의 전쟁은 곤란한 상태에 빠졌다"며 "부시 대통령은 이제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또 "부시 대통령은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거나 정치적 동기에 따른 '자기기만'에 소질을 가진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언론들의 비판적 논조와는 달리 이번 조사위 보고서가 부시 행정부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알 카에다와 이라크간에 연계가 없다는 주장이 상식처럼 퍼졌던 지난 4월 미 메릴랜드 대학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민의 57%는 이라크가 9·11 테러 전 알 카에다를 지원한 것으로 믿고 있다. 이는 지난해 이라크전쟁 발발 직전의 여론조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BBC는 "결국 9·11테러를 당한 미국인들의 정서는 무력의 사용을 원했었다"고 결론지었다.

이번에 보고서를 낸 9·11 테러 진상조사 위원회는 2002년 말 민주당과 공화당이 추천한 10명으로 구성돼 올 3월부터 10개국 1,000명 이상으로부터 관련 증언을 청취했다.

조사위는 4월중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 윌리엄 코언 전 국방장관 등 클린턴 행정부 고위인사와 콜린 파월 국무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부시 행정부 고위인사 들로부터 증언을 청취했다. 증언에 거부감을 표시했던 부시 대통령과 콘돌리사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도 여론에 밀려 조사위 증언에 참여해야 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