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사망으로 '레이거노믹스'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레이거노믹스는 레이건과 이코노믹스를 합친 말로, 레이건 정부의 경제 정책을 뜻한다. 감세와 규제 완화, 기업 중시로 요약되는 이 정책은 공급 경제학을 이론적 근거로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단기적인 자극보다는 장기적으로 경제에 활력을 주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정책은 투자를 촉진해 고실업과 고물가 등에 허덕이던 미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1990년대 장기 호황의 터전을 마련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에 '경제학'이라는 학문 명칭을 따라붙게 하는 영광을 누렸고, 이는 이후 이런 식의 이름 짓기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그는 막강한 경제력과 강력한 리더십으로 경제난에 허덕이던 소련을 압박해 '총 한 번 쏘지 않고' 냉전을 종식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국민들이 그를 '위대한 영웅'이라고 부르고,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존경하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그런데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당시 소련은 군비 경쟁을 계속할 수 있었으며, 레이건 정부의 군비 압박에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냉전 40여년간 양국은 각각 10조달러를 썼으며, 냉전으로 모두 패배했을 뿐 승리자는 없었다는 것이다.
■ 레이거노믹스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당시 영국 총리 대처의 대처리즘과 맞물린 신자유주의 정책은 복지 예산 축소로 빈부 격차를 키웠고, 세금 감면으로 정부 부채를 크게 증가시켜 이후 미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또 미국 경제 부흥은 다른 한편으로 제3 세계의 희생과 소득 불균형의 심화 등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의 지적도 비슷하다. 레이건 정부는 기록적인 경제성장으로 상징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클린턴 집권기의 경제성장률이 오히려 더 높았다는 것이다.
■ 현재 미국을 가장 괴롭히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 조직과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그가 남긴 유산이라고 워싱턴포스트가 얼마 전 보도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그들을 지원한 결과라는 것이다. 또 그가 1981년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국빈 초청한 외국 정상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때문에 5공 정권 지지라는 비난과 함께 그 후 한국에서 반미 감정이 잉태되는 토대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있다. 31년 만에 치러진 미국 국장(國葬)은 '역사의 평가'가 무엇인지를 생각케 한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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