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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서리의 아름다운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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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서리의 아름다운 추억들

입력
2004.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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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동네 형들로부터 배우는 서리에 대한 몇 가지 금도가 있었다. 서리를 하는 법 역시 형들로부터 배우는데, 이때 금도도 함께 배운다. 지금은 밀밭이 거의 없지만, 밀서리를 할 땐 사람당 다섯 이삭 이상을 자르면 안 된다. 그 선을 넘으면 서리의 장난이 아니라 곡식의 작폐가 되기 때문이다.감자서리의 규율은 그보다 조금 엄격하다. 우선 하지(夏至) 전에는 감자밭에 절대 손을 대면 안된다. 하루가 다르게 감자알이 굵어지는 시기여서 서리 역시 일단 하지가 지난 다음에 한다. 서리를 하며 포기를 뽑아서도 안 된다. 아직 알이 굵어지지 않은 감자가 땅 속에서 계속 자랄 수 있도록 땅 밑으로 손을 넣어 포기당 굵은 감자 한두 알만 꺼내야 한다.

주로 밤에 이루어지는 참외서리는 그보다 더 엄격하다. 서리를 하더라도 밭고랑만 밟고 다녀야지 밭두둑을 밟으면 안 된다. 서리로 참외 몇 개 따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자칫 밭두둑의 순을 잘못 밟아놓으면 그 해 그 밭의 참외농사를 완전히 그르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밭주인도 참외서리꾼만은 후닥닥 뒤를 쫓지 않는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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