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 음악을 당시의 악기와 연주법으로 재현하는 원전(原典) 연주는 최근 5~6년 사이 외국 연주자와 단체의 내한공연이 잇따르면서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그 시대의 악기들은 오늘날 악기보다 음량이 작고 소박하지만 좀 더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 그 고풍스럽고도 청량한 소리에 반해 이런 음악회를 찾는 관객도 늘고 있다.그러나 원전연주에서 한국은 불모지에 가깝다. 국내 첫 원전연주 앙상블 ‘무지카 글로피카’가 탄생한 것이 2002년. 미국에 살고 있는 바로크 바이올린 연주자 김진이 외국인 동료들을 불러모아 선보였다. 이와 동시에 원전연주를 보급하는 한국고음악협회가 발족했다. 그리고 지난해 국내 연주자들로 이뤄진 또다른 원전연주 앙상블 ‘타펠무지크(Tafelmusik)’가 생겼다. 국내 기반을 둔 자생적 원전연주 앙상블 1호다.
타펠무지크는 트라베르소(나무로 만든 바로크 플루트) 연주자 강인봉(40)과 그의 부인인 쳄발로 연주자 이선미(33), 리코더 연주자 조진희(41)가 만든 단체. 이들은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했다. 여기에 이탈리아에서 류트를 배우고 돌아온 김영익(47)이 올해 새로 합류했다.
창단 후 네번째, 김영익을 포함한 첫 연주회를 24일 춘천 문화예술회관, 27일 서울 영산아트홀에서 연다. 국내에서 보기 힘든 티오르바(대형 류트)가 등장하는 이번 공연은 1580년대부터 1700년대 초반까지의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 음악으로 꾸미는 무대. 코렐리, 스카를라티, 프레스코발디, 비발디, 로카텔리, 캅스베르거의 곡을 들려준다. 오후 7시 30분.
영어로 하면 ‘식탁 음악(table music)’ 쯤에 해당하는 ‘타펠무지크’는 왕궁이나 귀족의 연회나 식사 자리에서 편안하게 즐기던 음악으로 바로크 시대에 절정을 이뤘다. 강인봉은 “관객에게 편안한 음악을 들려주자는 생각에서 단체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고 설명한다.
멤버 중 가장 먼저 10년 전 귀국한 리코더 연주자 조진희는 “그동안 국내에 고음악 하는 사람이 없어서 외로웠는데, 우리나라 연주자들로 구성된 타펠무지크가 생겨 무척 반갑다”고 말한다.
타펠무지크는 앞으로 성악과 현악기를 포함한 전 장르로 멤버를 확대할 계획이다. 많지는 않지만 외국에서 고악기를 공부하는 한국인이 늘고 있고, 바로크성악 전공자도 하나둘 귀국하고 있어 전망은 밝은 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대학에 원전연주 전공 학과가 없는 현실은 이들을 걱정스럽게 한다. 현재 국내에서 고악기 정규 과정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기악과에 리코더 전공이 있을 뿐이다.
강인봉은 “1970년대부터 원전연주를 시작한 일본은 대학마다 대부분 전공 학과가 있고 유럽의 주요 음악원에서 가르치는 교수를 배출할 만큼 장족의 발전을 이룩했다”고 소개하면서 “원전음악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려면 전공 학과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공연 문의 서울 (02)747-2462 춘천 (033)244-8844
/오미환기자 mhoh@hk.co.kr
■국내유일 류트 연주자 김영익
타펠무지크의 새 멤버 김영익(47)은 국내 유일의 류트 연주자이자 제작자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에서 류트를 공부하고 지난해 7월 귀국했다.
“류트는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에는 모든 음악에 다 들어가던 가장 중요한 악기입니다. 모든 현악기의 조상이자 옛날 음유시인들의 악기이기도 하지요. 소리가 달콤하고 부드러워 마음을 진정시켜 줍니다.”
타펠무지크 연주회에 앞서 그는 22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국내 활동을 알리는 첫 독주회를 한다. 직접 만든 류트로 연주한다. 여섯 줄, 열 줄 짜리 류트와 함께 어른 키만큼 큰 열네 줄의 대형 류트 ‘티오르바’도 등장한다. ‘테오르보’라고도 불리는 이 악기는 류트 중에서도 가장 음역이 넓고 웅장한 소리를 낸다. 류트 제작은 밀라노 시립 악기 제작학교에서 배웠다.
“류트 음악을 보급하려고 해도 우리나라에는 악기가 없어서 직접 만들게 됐죠. 류트는 대량 생산을 할 수 없고 연주자 개개인의 신체에 맞게 주문제작하는 악기예요. 일일이 손으로 깎고 다듬고 붙여서 만들지요.”
유학 전 대학시절 그의 전공은 엉뚱하게도 치과기공. 중학교 때부터 취미로 클래식 기타를 치면서 음악을 독학하다가 이탈리아에 가서 비로소 류트를 만났다. 류트는 기타의 먼 조상 뻘이다. 대부분의 류트 연주자가 기타로 출발한다. 유럽에서 기타 전공자는 반드시 류트를 배운다고 한다.
이번 연주회는 르네상스 음악 중심으로 짰다. 국내 무대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곡들이라 흥미로울 것 같다.
“류트만 하면 지루할까봐 노래를 많이 넣었어요. 다울랜드와 게드롱의 곡은 노래가 끝나면서 시 낭송이 들어갑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먼저 노래의 조(調)를 알려주는 기악 연주를 한 다음 노래를 부르고 끝으로 시를 낭송하는 게 일반적인 연주 방식이었지요.”
이번 무대는 쳄발로 연주자 이종실, 소프라노 김호정, 고음악 성악앙상블 ‘스콜라 칸토룸 서울’이 함께 한다. 공연 문의 (02)586-0945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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