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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일본사회당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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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일본사회당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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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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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국회에 민주노동당이 원내 제3당으로 진출했다는 사실은 한국 정당정치 역사상 최대의 지각변동이다. 우리 정당정치를 규정해 왔던 보수독점구조가 마침내 허물어진 것이다. 또 민주이행 이후 정치지형을 지배해 왔던 지역정당체제 역시 본격적 와해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현재 주요 정당들 내부에서 전개되고 있는 정체성 논쟁은 바로 지역을 대체할 이념적, 정책적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바람직한 노력들이다. 민노당의 약진은 이처럼 한국 정당정치의 발전적 변화를 촉발시켜 준 대단히 긍정적인 사건이다.흥미로운 것은 이념적 정체성 확립을 위한 진통으로부터 민노당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대중정당 조직원리에 맞추어 당 지도부를 전원 원외 당원으로 교체한다든가, 새 지도부 구성과 선출 과정상에 이념정책노선을 둘러싼 투쟁 양상이 드러나는 것 등은 한국 최초의 본격 좌파 정당다운 모습으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당 조직과 정책 노선 상에 노동자 중심성을 견지할 것인가. 사회주의 경제원칙에 충실할 것인가 아니면 통일과 자주와 평화에 투쟁력을 결집시킬 것인가. 이런 문제들을 둘러싼 민노당의 노선투쟁이 어떻게 귀결되는가는 민노당의 미래와 나아가 정치적 노동운동의 미래를 크게 좌우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민노당은 일본사회당의 경험을 소중한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보수 자민당을 정점으로 한 소위 '55년 체제'가 출발했던 1950년대 중반 일본사회당은 사실 강력한 성장잠재력을 구축한 대안적 정치세력이었다. 58년 총선에서 일본사회당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30%가 넘는 득표율을 과시하며 보수지배체제를 위협했다. 그러나 이때 이후 사회당은 급속히 쇠퇴해 갔다. 50년대 말 집권 자민당과 안보정책을 둘러싸고 격렬한 이데올로기 투쟁을 거친 후 정당 조직은 사회당과 민주사회당으로 갈라졌다. 노동시장 조직 역시 사회당과 깊숙이 연계해서 정치투쟁을 전개해 온 총평(總評)에서 이탈한 세력들이 동맹(同盟)이라는 새 조직을 결성함에 따라 양분되었다. 이후 자민당에 대한 일본 유권자들의 지지가 지속적으로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사회당은 결코 이탈 세력을 끌어들이지 못하고 자민당과 동반 쇠퇴를 거듭했다. 80년대 이후 신보수주의의 확산과 함께 보수세력은 장기저락을 벗어나 완연한 회복세를 보였지만 일본사회당은 총평과 함께 조직 자체가 붕괴되는 길을 걸어야만 했다.

돌이켜 보면 일본사회당의 운명은 50년대 후반 이들이 선택했던 노선에 의해 사실상 결정되었다. 당시 일본 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성장의 과실은 아직 노동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제공되지 못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은 커갔다. 그러나 일본사회당은 소위 '빵'의 문제를 가지고 자민당 정부와 대결하려 하지 않고 외교정책과 군사정책을 둘러싼 이데올로기 투쟁에 당력을 집중시켰다. 경제투쟁보다는 정치투쟁을 선택했던 것이다.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둘러싼 60년의 대투쟁은 사회당 투쟁의 절정이자 또한 파국이었다. 그러나 경제투쟁 노선의 포기는 궁극적으로 당 조직을 분열시키고 지지기반을 와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늘날 노동자 정당 혹은 좌파정당의 위기와 퇴조는 비단 일본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탈산업화와 그에 따른 계급구조의 변화, 노동계급의 파편화와 계급의식의 약화, 세계화의 도전 등 선진국 좌파 정당들을 위협하는 모든 요소들은 민노당 역시 회피할 수 없는 현실적 도전들이다. 이에 대한 정책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아무리 힘든 과제라고 하더라도 이를 외면한 채 이념적으로 선명하고 정책적으로 단순해 보이는 군사, 외교, 통일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고 투쟁할 경우 민노당의 앞날은 아마 일본사회당의 그것보다 더 암울할 것이다.

/김수진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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