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정말 세상을 떠났다면 묘소라도 찾게 해줄 수는 없나요."40여년 전 헤어진 북한의 남편을 그리는 루마니아 여인 제오르제타 미르초유(70)씨의 애끊는 사부곡(思夫曲)이 23일 밤 12시에 방송되는 KBS 1TV 수요기획 '미르초유, 나의 남편은 조정호입니다'(연출 김덕영)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다.
독립제작사인 BOX-TV프로덕션의 김덕영 PD가 미르초유씨의 사연을 접한 것은 올해 초. 학교 선배인 영화감독 박찬욱씨가 루마니아 여행 중 들은 얘기라며 귀띔해줬다. 수소문 끝에 4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로 날아간 김 PD에게, 그녀는 살아있다면 올해 77세가 되었을 남편의 젊은 시절 사진과 수십 통의 편지를 꺼내보이며 절절한 사연을 털어놓았다.
1953년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북한의 전쟁고아 위탁교육 시설인 시레트 조선인민학교 교사로 부임한 미르초유씨는 전쟁고아 2,000여 명과 함께 루마니아에 온 조정호씨를 만났다. 남 몰래 사랑을 키운 두 사람은 57년 루마니아와 북한 당국의 허가를 받아 화촉을 밝혔고, 59년 북한 고아 송환에 따라 평양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듬해 태어난 딸의 이름은 미란. 그녀의 성 첫 글자와 시어머니가 좋아했다는 난초 난자를 더해 지은 것이다.
세 가족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녀는 62년 딸의 구루병을 치료하기 위해 잠시 루마니아로 왔다가 그 무렵 북한에서 일어난 '외국인 배척 운동' 탓에 남편과 영영 생이별을 하고 말았다.
그 후 미르초유씨는 북한측에 남편의 소식을 묻는 탄원서를 수없이 보냈지만 "실종됐다"는 답변만 되풀이됐고, 83년 사망확인서가 날아왔다. '1957년 정호'라고 안쪽에 새긴 결혼 반지를 지금껏 한 번도 손가락에서 뺀 적이 없다는 그녀는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남편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면서 아직도 재회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다시 만났을 때 남편과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며 혼자서 한글을 공부해온 그녀는 그동안 써온 다섯 박스 분량의 단어 메모를 모아 곧 최초의 '한국어―루마니아어 사전'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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