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한미군 용산기지 이전과 병력감축 문제를 놓고 미국과 밀고 당기는 실무협상을 이끌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차영구(예비역 중장) 전 국방부 정책실장. 그는 조성태 전 국방장관과의 인연이 없었더라면 그 같은 국가적 과업을 맡을 기회가 애당초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육사 진학이 내 인생 전반기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면, 인생 중반기의 전환점은 조성태 장관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차 전 실장은 비 야전출신으로 육군 중장까지 오른 아주 드문 이력을 갖고 있다. 군에서 중대장, 연대장 등 야전 경험이 없는 군인이 장군이 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 더욱이 학문의 길을 선택한 군인이 별 셋까지 오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창군이래 이런 관례를 깬 경우는 박용옥 전 국방차관에 이어 차 전 실장이 두 번째다.
"육사를 졸업한 뒤 유학길에 올라 프랑스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국방연구원(KIDA)에서 근무하고 있었죠. 오로지 연구생활로 14년을 보낸 1991년 당시 국방부 정책실장이던 조 장관의 부름으로 인해 제 인생 행로가 180도 달라지게 됩니다."
당시 미국은 동아시아전략구상(EASI)에 따라 주한미군 감축안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 조성태 정책실장은 "한국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어떻게 미군 철수가 이루어질 수 있느냐"며 미국에 제동을 걸었다. 결국 한국은 미국정부의 양보를 이끌어내 국방연구원이 미 랜드연구소와 미래 한미동맹 문제를 공동 연구하게 된다.
조성태 실장이 이 때 한국측 대표로 차 전 실장을 강력히 추천했던 것. 두 연구소는 92년부터 2년 간 연구 끝에 오늘날 주한미군철수계획의 기본토대가 되는 '새로운 동맹(A New Alliance)' 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차 전 실장은 이후 94년 11월 대령 계급으로 준장 보직인 국방부 정책차장에 전격 발탁됐다. 비야전 출신에다 계급까지 뛰어넘은 인사는 파격중의 파격이었다. "학문의 길을 걷고 있던 저를 조 장관이 국방부로 불러주어 인생계획에 없었던 야전에 뛰어들게 됐고 학문과 현실을 접목시킬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96년 10월 준장으로 진급한 그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변인에 발탁되는 등 탄탄대로를 달렸다. 그러나 호사다마랄까, 99년 연평해전 후 그는 남북관계를 부부싸움으로 비유했다가 야당의 반발로 대변인에서 해임돼 군문에서 떠나야 할지 모르는 '위기'에 처하게 됐다.
그때 마침, 이미 퇴직했던 조성태씨가 국방장관으로 임명돼 컴백했다. 조 장관은 차 전 실장을 자신의 특별보좌관으로 중용했다. 전화위복이었던 셈이다. 차 전 실장은 그 해 10월 소장으로 진급해 정책국장을 거쳐 정책실장에 오르고 2002년 중장으로 승진했다.
"조 장관과는 92년 전까지 아무런 인연이 없었어요. 육사도 5년이나 차이 나고 고향도 조 장관은 충청이고 저는 호남입니다. 조 장관이 능력을 중시하시는 성격이라 저에게 기회를 주셨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차 전 실장은 현역시절 한미현안협상에 있어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조 전 장관을 찾곤 했다고 회상했다. 4월 전역한 그는 "조 장관이 이제 국회의원으로 일하게 된 만큼 자주 찾아 뵙고 국방정책 입안에 조금이나 도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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