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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국정의 화근 된 '수도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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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국정의 화근 된 '수도 이전'

입력
2004.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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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와 시·도 간 대립이 표면화 되고 있는 가운데 수도 이전 대상 후보지가 발표되었다. 이로써 천도 논쟁은 본격화하게 되었다. 득표용으로 급조된 공약을 '신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어법에도 맞지 않는 말로 포장할 때부터 미심쩍었다.수도 이전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치고 국제관계, 통일, 안보와도 밀접히 연관된 사안이다. 그 논의를 공간 부문에 국한하게 되면 공간 논리 자체로서도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수도만 옮기면 서울의 과밀이 해소되고 균형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따라서 논리의 비약이다.

대선에서 '재미 본' 정략을 총선에서 버릴 바보는 없다. 급기야 얼빠진 야당마저 충청권 표 잃을까 두려워 야합하고 말았다. 국회는 그렇게 공청회 한 번 하지 않고 천도법을 통과시켜 버렸다. 전문가들이 모여 재론을 요구하는 포럼을 결성하고 '방성대곡'하였지만 탄핵 열풍에 휩쓸려 묻혀버렸다.

백약이 다 효험이 없어 극약 처방을 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제대로 된 처방인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그 전에 오히려 집중의 근본 요인인 권력 자체를 분산할 생각은 왜 안 했나? 하기야 대통령의 선거공약 하나로 수도가 덜컥 옮겨 가는 판에 불경스럽게도 감히 그 권력을 나누자고 할 장사가 측근에 있을까?

청와대와 행정부는 물론 국회와 대법원을 필두로 여타 헌법 기관들과 국가 중추 관리 기능들을 몽땅 옮기겠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설마 하던 민심도 정색하고 나섰다. 천도(遷都)가 아니냐 하니까 "신행정수도 건설이고, 배는 이미 떠났다"고 막무가내다.

국정 우선 과제에 대해 정부 여당은 물론 국책연구소들과 친여적인 매체의 인사들은 토를 달지 못한다. 관변단체들과 어용학자들이 나서서 논리를 급조해 보지만 처음부터 무리한 일이었다. 밀리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강변을 거듭하는데 또 다른 무리를 부를 뿐이다. 국정이 수도 이전 합리화의 넝쿨에 감겨들고 있는 것이다.

남한만의 영토를 대상으로 하는 수도 이전이 반통일적, 분단고착적이지 않느냐 하니까, 통일이 언제 될지도 모르는 판이라고 시침 뗀다. 통일되면 서울에 북한 난민을 수용해야 하므로 수도가 미리 내려 가 있어야 한다고 한 술 더 뜨기까지 한다. 무책임하다는 말에는, 그럼 개성이나 판문점에 통일수도를 지으면 될 것 아니냐고 둘러댄다. 남북한 수도 각각 두고 또 수도 하나를 더 갖는다면 그게 연방제 아니냐고 다그치자, 평화통일 하려면 그 수밖에 더 있느냐고 윽박지르고 나선다. 수도 이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체(國體)까지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관련 연구소에서 수도 이전 효과의 90% 이상이 충청권과 수도권에 국한된다고 하자, 나머지 지역으로 공공기관을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들고 나왔다. 연구개발기능을 여건이 불비한 지방 도시로 흩어 놓으면 고급인력이 외면하고 네트워크가 무너져서 부실해지지 않겠느냐고 하자, 각 시도마다 신도시를 건설해서 묶음으로 내려 보내겠단다. 그 수가 무려 열 개 내지 스무 개라니, 배보다 배꼽이 커지고 있다.

4조원이라던 건설비가 46조원으로 늘어나더니, 국책연구소 용역 보고는 다시 그 배 이상이 들 것 같다고 한다. 그걸 다 어떻게 조달할 거냐고 물으니, 기존 청사들을 팔아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다고 한다. 청와대와 국회의사당과 대법원을 팔아서 이사비용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더라도 그건 그야말로 건설에 드는 직접 비용이다. 아직 방위계획 수정, 국토계획 개편, 홍보와 각종 소프트웨어에 드는 비용, 민간 부문 비용 등 간접비용은 계상도 안 되었다. 부동산 투기는 말할 것도 없다.

수도 이전이 국정의 화근이 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멈추고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태평성대가 아니고, 나라는 실험대상이 아니다.

/유우익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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