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뉴미디어 시대라고 하지만 한국처럼 신문 산업이 퇴화하고 있는 국가도 드물다. 독자 수, 광고 시장, 정치사회적 영향력 모두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신문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한성순보 이후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근 100년 동안 한국 신문의 성격을 규정한 것은 국가체제였다. 구한말, 일제 식민지, 미 군정, 군사독재 등을 거치면서 한국의 신문은 국가의 통제와 개입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신문 산업의 구조는 정부의 신문 정책에 따라 형성되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강제로 폐간되는 신문이 생기기도 하고 국가의 보호 덕분에 엄청난 특혜를 누리며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신문도 나타났다.
구한말 개화의 목적으로 출발한 한국 신문은 일제시대에는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극소수 발행인에게만 제한적으로 허용됐다.
광복 이후 신문 발행의 자유가 신장되긴 했지만 좌우익의 대립구도 하에서 여전히 정부의 강력한 통제와 견제를 받아야 했다. 한국의 신문 산업은 1960년대 박정희 정권 하 시장 보호 속에서 급성장하기 시작했고, 70년대 대기업화 단계를 거쳐 80년대에는 독과점 시장 구조 속에서 막대한 이윤을 축적하게 된다. 그러나 신문 기업의 이윤은 신문의 품질이나 경영 기술과 무관하게 결정됐다. 국가가 시장을 통제하고 이윤을 보장해주는 체제였기 때문이다.
한국 신문이 본격적인 시장경쟁 체제에 편입된 것은 88년 정기간행물 등록법이 제정되고 신문 발행의 자유가 대폭 신장되면서부터였다. 군사독재 체제가 종식되면서 새로운 신문이 잇달아 창간되었다.
그러나 신문 산업에 대한 정책적 진공 상태가 형성되면서 시장은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대부분의 신문은 품질 개선보다는 물량 경쟁에 치중해 방만한 투자와 누적되는 적자로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했고, 시민사회의 신뢰를 급속히 상실했다.
IMF 금융위기, 뉴미디어의 등장 등 외적인 요인도 신문 산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독자 수요와 광고 수요 모두 급격한 하강세를 보였다. 인터넷이 젊은 세대의 주된 뉴스 공급원으로 자리잡으면서 신문 시장의 위축세는 더욱 완연해졌다.
신문사들은 줄어드는 독자와 광고주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신문의 질을 높이고 전체 시장의 규모를 늘리는 전략보다는, 자사의 점유율을 늘리는 데에만 몰두했다. 결국 자본과 보급망을 확보한 거대 신문사와 그렇지 못한 신문사 간 격차가 더욱 확연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국 신문 시장은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과점 시장으로 굳어졌고 신문의 품질, 즉 뉴스의 정확성이나 공정성이 판매 부수와 무관한 왜곡된 시장이 형성됐다. 이러한 시장 구조는 신문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를 크게 약화했고, 신문 산업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더욱 떨어뜨려 수십 억에서 수백 억원의 적자를 누적한 부실 기업을 양산했다.
신문 산업이 재기하려면 우선 시장의 구조와 산업의 체질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 신문이 당면한 위기의 주범이 바로 정부의 그릇된 신문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그 강도는 달랐지만 한성순보 이후 5공 정권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법적으로 신문 시장을 엄격히 통제했다. 취약한 정치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신문을 통제하고 선전과 홍보의 매체로 동원하고자 했다. 그 결과 언론 자유의 핵심인 신문 발행의 자유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신문 시장은 시장 논리와는 무관하게 정권의 필요에 따라 조정되고 재편됐다. 신문 시장의 진입은 철저히 규제하는 대신 신문 기업에 대해 많은 특혜와 지원을 제공했고 불법적 담합이나 부당 거래를 묵인함으로써 권력 통제에 대한 신문업계의 반발을 무마해 왔다.
이 때문에 신문 시장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 생산성이 향상되고 부가가치가 증대되는 시장 기능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특혜 지원과 불공정 행위가 일반화했고, 이는 신문 시장의 경쟁력을 약화했다.
광고수가와 신문판매가격 담합, 발행부수 부풀리기 등의 불법적, 반시장적 행위가 공공연히 이루어졌다. 여기에다 정부는 언론 기업의 강제적 통폐합, 특혜 금융,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언론 시장의 자유경쟁 질서를 더욱 왜곡시켜 왔다.
민주사회로 진입한 90년대 들어서도 신문 산업을 정상화하고 경쟁력을 부여하려는 정책적, 제도적 대안은 적극 모색되지 않았다. 신문 정책은 정략적 이해관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신문 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하라는 시민사회의 요구도 정부의 무관심과 거대 신문사들의 반발로 실현되지 못했다. 결국 정부와 신문 모두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효율적인 정책 홍보와 여론 형성 수단의 부재로 국정 운영은 차질을 빚었고, 일부 신문은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의 교육 수준이나 소득 수준을 고려할 때 신문 산업은 더욱 성장해야 한다. 신문업계가 품질 개선과 시장 개혁을 통해 독자와 광고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한다면 한국 신문은 여전히 성장하고 발전할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신문 산업의 구조적 혁신은 신문업계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정부가 함부로 강요하거나 개입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신문 시장의 합리화, 정상화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는 신문의 위기가 국가적 위기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을 읽지 않는 국민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제반 사안에 무관심하고 무지하게 마련이다. 국민이 신문을 읽지 않으면 다양한 의견과 이해관계를 반영해 풀어야 할 민주사회의 제반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공론이 형성되지 않고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첨예화한다. 결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와 신문업계가 과거 시행착오를 차분히 돌아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신문 산업 진흥을 위한 합리적이고 근본적인 정책적, 법적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신문 발행의 자유와 공정한 시장 경쟁 체제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신문업계도 제살깎기 경쟁을 지양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시민사회와 함께 공동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신문의 미래는 곧 한국의 미래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외형은 성장… 신뢰는 급락/경품난립 시장구조 고쳐야
신문이 위기를 맞게 된 주원인과 해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한국 신문이, 그리고 신문 산업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신문 바로 세우기'는 바로 그 위기의 실상을 바로 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국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4개 중앙일간지의 총 매출액은 1987년 2,795억원에서 2002년 1조4,990억원으로 5.4배 가량 늘었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 성장과 달리 종이신문의 존재 기반인 구독률과 독자의 신뢰도는 급락하고 있다.
한국언론재단이 2년마다 실시하는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신문 구독률(가정)은 96년 58.1%에서 98년 55.3%, 2000년 52.2%로 감소해 2002년에는 41%로 2년 만에 무려 10% 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더 큰 문제는 신뢰도 추락. 같은 조사에서 신문의 신뢰도(5점 척도 평균)는 96년 3.46, 98년 3.21, 2000년 3.07, 2002년 3.05로 하락세를 보여왔다. 특히 매체별 신뢰도 순위(2002년)에서 신문은 라디오(3.46)와 TV(3.27)는 물론, 인터넷(3.23), 케이블·위성 등 유선 방송(3.12)보다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추락하는 신뢰도를 회복할 길은 당연히 신문 상품, 즉 기사의 질을 높이는 데서 찾아야 한다. 자본력을 앞세운 과점 신문들은 구독률 감소를 막기 위해 자전거 따위 경품도 모자라 상품권까지 뿌리고 있지만, 이는 미봉책일 뿐 아니라 신문 시장의 공멸을 부를 수 있다.
4일 200여 개 시민사·사회단체가 참여해 출범한 언론개혁국민행동이 신문고시 강화 등을 통한 '신문시장 정상화'를 5대 핵심 과제의 하나로 내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신학림 언론노조 위원장은 "최근 한 일간지 사장은 경품과 무가지를 뿌리지 않을 경우 신문을 끊는 자연절독률이 무려 48%에 달한다고 실토했다"면서 "신문개혁은 경품으로 간신히 유지되는 왜곡된 시장 구조를 바로잡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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