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더워졌다. 아직 나무는 초여름의 신록인데, 마치 한여름의 무더위 같아 좀 이상하다. 날씨가 더워지니 특히 여성들의 노출이 대담해진다. 어딘가 풀려있는 내 시선에 거리의 관능이 밀려온다.얼마 전 TV 문화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 여성들이 아시아에서 가장 외모에 신경을 쓴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때 남성 진행자가 이런 말을 했다. "이유는 우리나라 남성들이 아시아에서 가장 여성들의 외모에 신경을 쓰기 때문"이라고. 그 남성 진행자는 마치 자신은 그 남성들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맺었다. 그러나 그는 집에 가면서 자신의 이중성에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는 누구 못지않게 거리에서 여성들의 외모에 신경을 쓰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사실은 내가 바로 그 남성 진행자였다.
생각해보면 집안에 그런 내림이 있는 것 같다. 할아버님이나, 아버님이나 거리를 걸으시다가 저쪽에서 시선을 끄는 여인이 나타나면 아예 몸 전체가 그 쪽으로 돌아가는 분들이셨다. 화가 난 어머님이 아버님을 거리에 남겨두시고 혼자 집으로 돌아와 버린 적도 몇 번 있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아, 초등학교 앨범을 보면 여학생들 사진 밑에 점수가 매겨져 있다. 고교 때는 이상하게 여성들의 다리에 집착하게 되면서 길을 걸을 때 일일이 스치는 여성들의 다리에 점수를 매기곤 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결심하게 되었는데, 그 순간 눈동자가 흔들리는 묘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흔이 넘은 지금 눈동자가 흔들리지는 않지만, 아직도 여성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는 죄책감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난처하게 시작한 이 글을 어떻게 맺는 것이 좋을까? 진심으로 내 시선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으면 하고 바란다.
/ 박성봉 경기대 교수 다중매체 영상학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