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우리 협상 팀은 미국의 제안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2005년까지 1만2,500명의 주한미군 감축을 완료하겠다는 미국의 계획은 우리 1년 이상 앞당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즉각 협상을 통해 시기와 규모를 조정할 것이라며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부가 미국측 계획을 지연시키려 하는 것은 안보에 대한 불안심리 때문이다.
막연한 감이 아닌 구체적 정황도 제시된다. 주한미군이 후방으로 빠지면 수도권을 향한 장사정포의 공격력이 강해지고 대전차 무기 등을 갖추고 서울-문산 축선을 지키는 미2사단 2여단의 감축으로 전력공백이 발생한다는 등이다.
김태우 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군 4,000명 감축으로 대북 억제 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며, 8,000명일 때는 더 심각해 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보공백에 대한 대책은 여러 갈래로 나온다. 국방비를 대폭 증액해 전력을 보완해야 한다는 자주국방론과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동맹중시론이 팽팽히 맞서는 형국이다.
정부는 현재진행중인 자주국방 10개 년 계획을 앞당기면 감축 이후에도 전력공백은 없다는 입장이다. 내년 국방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9%로 올린 데 이어 참여정부 임기 말까지 3.2%까지 끌어올린다면 자주국방 틀은 잡힐 것으로 보고있다.
반면 동맹중시론자들은 "동맹을 가볍게 보고 자주국방 운운하다 주한미군 감축이라는 상황을 불렀다"면서 "그러고도 '바지가랭이를 잡지 않겠다'는 등 발언으로 안보불안을 부추기는 형국'이라고 지적한다. 정부는 정부대로 동맹관계에는 문제가 없다는 반박을 계속하고 있다.
문제는 새로운 한미동맹의 미래상은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동맹의 문제점이나, 안보공백 논란을 벌이는 것은 공론에 그칠 뿐이다. 주한미군 감축과 한미동맹 재조정은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정부는 '협력적 자주국방'과 '포괄적·역동적 동맹'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대비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주한미군 감축을 대비한 동맹재조정의 필요성을 주장한 보고서만 수천페이지에 이르는 데도 준비가 소홀해 혼란이 야기됐다"고 입을 모은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한미 양국이 한반도 주변의 변화한 안보지형을 반영하는 새로운 동맹의 공감대를 형성해 이를 안보선언에 담아야 할 것"이라면서 "현재 한미간의 논의는 선후가 뒤바뀐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 본보, 국민의식 여론조사
주한미군 감축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한반도 안보공백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점점 커져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경험한 50대 이상과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30대 이하의 주한미군 감축에 대한 견해는 완전히 엇갈렸고, 지역별·계층별 차이도 뚜렷했다.
한국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미군 감축으로 인해 한반도에 안보공백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61.3%(많이 생긴다 17.3%, 약간 생긴다 44%)로 과반수를 넘었다. '안보공백이 없을 것'이라는 응답자는 37.2%(별로 없다 32.6%, 전혀 없다 4.6%)에 그쳤다.
이 가운데 안보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50대(69.8%), 60세 이상(70%), 대구·경북(78.1%)에서, '공백이 없을 것'이라는 답변은 30대(47.7%), 화이트칼라(48.2%), 광주·전남·전북(54.6%)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다른 대북·안보 현안처럼 세대별·지역별 인식 차가 눈에 띈다.
이 같은 결과는 지난달부터 미국이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을 통보하고 감축협상 내용이 공개되면서 일어난 충격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미2사단 1개 여단의 차출 사실이 알려진 지난달 18일 SBS 조사 결과 '크게 우려할 문제가 아니다'는 답변이 58.7%로 '안보공백이 우려되는 심각한 상황'이라는 답변 40.8% 보다 많았다. 발표 이전인 지난 2월16일 한국일보 조사에서는 국민 절대 다수인 74.4%가 주한미군 재배치가 한국의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안보공백을 인정하면서도 국민이 실제로 느끼는 안보불안 체감지수는 낮은 것으로 드러나 눈길을 끈다. 본보 조사에서 '안보불안을 느낀다'는 답변은 47.2%(매우 불안 7.6%, 다소 불안 39.7%)였지만, '불안하지 않다'는 답변은 52.6%(별로 불안하지 않다 41%, 전혀 불안하지 않다 11.6%)로 더 많았다. 이는 주한미군 감축의 공백이 우리 군의 전력증강 또는 남북 화해기류로 보완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가 2년 가까이 논의돼 국민이 다소 둔감해졌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또 한미군사동맹이 과거와 변함 없다는 응답자가 46.5%로, 점차 나빠지고 있다는 응답자 39.4%보다 많았다.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견해는 감축 지지 48.2%(철수 9.7%, 줄여야 한다 38.5%)로 현수준 유지와 증강(47.7%, 3.2%)을 합친 50.9%와 비슷했다. '현수준 유지'는 50대(59.8%) 60세 이상(69%) 대구·경북(60%)에서, '감축'은 30대(50.3%) 광주·전남북(49.9%), 화이트칼라(48.7%)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전문가 제언/용산기지 이전협상 정부 서둘 필요 없다
주한미군의 조기감축이 가시화했지만 정부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방부는 구실이 없어 미뤄왔던 대규모 무기구매 계획들을 자주국방이라는 미명아래 한꺼번에 해치울 태세다. 반면 외교부는 대미협상에서 여전히 과거의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 채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주한미군 감축에 대해 정부는 사후약방문식 처방과 땜질식 대처로 일관하고 있다. 장기적인 비전이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한미관계를 새롭게 재정립하고 우리안보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를 찾아 볼 수 없다. 정부는 미국과 협상에 의연하고 당당하게 임해야 한다. 내년 말까지로 제시된 미 2사단의 감축 시한을 가능한 한 늦추어보려는 것이 정부의 협상목표로 보인다. 그러나 시기를 1∼2년 늦추려다가 도리어 불필요한 많은 반대급부를 미국에 지불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용산기지 이전협상에서 불리한 양보를 하고, 주한미군분담금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더욱이 불필요한 미국 무기의 강매를 덤터기로 뒤집어쓸 가능성이 크다.
3인위원회를 구성해 주한미군 감축협상을 용산기지 이전문제를 다뤄 온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와 별도의 채널에서 하고 있는 것부터 잘못이다. 해외주둔 재배치계획(GPR)의 일환으로 서로 연관돼 있으므로, 단일 협상창구를 통해 상호 연계해서 포괄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존의 용산기지 이전협상은 현 규모의 주한미군 주둔을 전제로 진행되어 왔다. 따라서 미군감축으로 인해 소요되는 대체부지가 줄어들게 된 점이 협상에서 당연히 고려돼야 한다. 또 용산기지이전이 GPR의 일환이라는 것이 드러났으므로 이전비용을 우리가 전부 부담하기로 한 것도 재협상해야 마땅하다.
우리 정부는 협상을 서둘 아무런 이유가 없다. 용산기지 이전협상이 지연될 조짐을 보이자 다급해진 것은 미국이다. 지연될 경우, 주한미군 감축을 포함해 GPR 전체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급기야 미 협상대표인 롤리스는 협박성 발언과 언론플레이를 하기에 이르렀다.
협상을 미국의 대선이후 새로 출범한 정부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케리 민주당 후보다 당선될 경우 한반도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예상된다. 주한미군 감축 자체가 취소되지는 않지만 규모와 시기가 조정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정부는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에 대해 단호한 반대입장을 표해야 한다. 우리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미 한미간에 지역동맹화에 대한 상당한 논의가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국민에게 한반도 안보상황과 남북한 군사력의 실상을 솔직하게 알려야 한다. 북한의 군사력을 부풀리고 북한의 위협을 과장해온 군사독재시대의 유산을 이제는 청산할 때가 되었다. 그나마 국민들이 침착하고 의연한 것이 다행이다.
/이철기 동국대교수 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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