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백건우가 폴란드 국립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내한공연은 올해 클래식 팬들이 가장 기다린 공연 중 하나다.쇼팽의 조국 폴란드를 대표하는 악단, 이미 18회나 함께 연주해본 지휘자 안토니 비트와 백건우의 찰떡궁합으로 들려주는 쇼팽이라니! 최상의 조합이다. 서울 등 전국 5개 도시를 도는 이번공연 중 12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연주회는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고도 남을 만큼 훌륭했다.
이날 공연의 1부는 쇼팽의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소품 '크라코비아크 작품 14'와 관현악으로 편곡한 '폴로네즈 가장조'에 이어 도브르진스키, 루토슬라브스키, 킬라르의 곡을 연주하고 2부에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을 배치했다.
백건우의 쇼팽은 이미 음반으로도 정평이 나 있지만, 실황에서 그가 보여준 성실하고 아름다운 연주는 관객을 열광시켰다. 특히 쇼팽이 첫사랑의 소녀를 생각하며 작곡했다는 2악장에서 달콤한 선율을 풍성한 색채를 입혀 유려하게 풀어내는 솜씨는 청중들을 행복감에 젖게 했다. 지음(知音)의 지휘자는 피아니스트를 세심하게 배려하며 편안하게 호흡을 맞췄다.
폴란드 작품들을 소개한 1부도 흥미로웠다. 쇼팽의 친구였던 도브르진스키의 오페라 '몬바르' 서곡과 20세기 작곡가 루토슬라브스키의 '작은 모음곡', 현존 작곡가 보이체크 킬라르(72)의 '오라와' 서곡을 연주했다. 음악강국 폴란드의 전통을 자랑스럽게 과시하는 선곡이라 부럽기도 하고, 각각 목관과 금관, 현의 기량을 골고루 보여주는 곡들이라 다채로운 메뉴로 짠 미식가의 식탁처럼 느껴졌다.
특히 현악기만의 '오라와' 서곡은 매우 현대적이면서도 폴란드 민속음악의 색채를 띤 것이었는데, 신선하고 재미있는 악상으로 관객을 열광시켰다.
진행 방식에서 미국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의 미니멀음악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곡은 선율과 리듬을 반복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고조시키다가, 그 정점에서 갑자기 지극히 서정적인 선율을 부드럽게 펼쳐 관객을 완전히 무장해제시켜 버렸다. 균일한 리듬의 맹렬한 총주에서 보여준 일사불란하고 한 치도 빈틈없는 앙상블은 이 악단의 명성이 허명이 아님을 실감케 했다.
10일 울산에서 시작한 백건우와 바르샤바필의 공연은 15일 천안 백석대학 백석홀 연주로 끝난다. 서울에서와 달리 지방공연은 킬라르의 '오라와' 서곡과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 차이코프스키 '비창'으로 짜여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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