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람들이 자주 쓰는 표현에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느 것부터 먼저 듣고 싶으냐"는 것이 있다. 요즈음 나의 심정이 그러하다.우선 좋은 소식이다. 그것은 재보궐 선거 참패 후 노무현 대통령이 김혁규 전 경남지사 총리카드를 접은 것이다. 말이 많았던 김 전 지사 카드가 물 건너간 것도 다행이지만 특히 노 대통령이 고집을 부리지 않고 민심을 받아들인 것은 성숙한 리더로 변신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노 대통령의 용기 있는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나쁜 소식도 있다. 후임 총리후보로 거론되던 한명숙, 문희상 의원 등을 제치고 전격적으로 이해찬 의원을 지명한 것이다. 물론 이 의원은 민주화 운동 경험에다 오랜 의정 생활과 교육부 장관 등 풍부한 국정 경험을 갖고 있다. 또 치밀한 기획력 만큼은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게다가 노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해찬 카드야말로 정치공학적으로 절묘하기 짝이 없는 묘수 중의 묘수이다.
얼마 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천정배 의원에게 패한 이 의원을 총리에 임명함으로써 김혁규 총리안을 놓고 불편한 관계에 있던 신기남, 천정배 체제, 나아가 이들을 지지했던 초선 의원 그룹을 한 칼에 견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차기 주자로 입각이 거론됐던 정동영 전 의장의 친구이자 김근태 의원의 후배인 이 의원을 이들보다 훨씬 높은 총리에 앉힘으로써 이들의 운신의 폭을 대폭 제약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해찬 카드는 개인적으로 나쁜 소식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교육부 장관 시절 보여준 행적 때문이다. 특히 교육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 협의회(민교협)'의 공동의장으로서 그의 정책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싸워야 했던 나로서는 이해찬 카드가 등장한 것은 승냥이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격이다. 다시 말해, 설상가상이다.
그는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을 군사쿠데타 식으로 밀어붙여 공교육 붕괴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오죽했으면 '이해찬 세대'라는 자조적인 표현이 생겨났겠는가? 긴 말이 필요 없이, 진보적인 전교조와 보수적인 한국교총이 한 목소리로 그의 총리 지명에 반대의사를 밝히고 나선 것은 그의 교육정책이 어떠했었는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대학 교육의 경우도 신자유주의적인 교육 발전 5개 년 계획과 교수들이 '바보 코리아 21'이라고 조롱하는 '두뇌한국 21(BK 21)'이라는 기이한 연구지원 프로그램을 들고 나와 역사상 유례 없이 전국 교수 1,000여 명이 시위를 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이런 이유로 민교협 역시 이 의원 총리 지명에 반대하기로 했다.
스타일도 문제다. 이 의원이 욕을 먹고 교육부 장관을 퇴진해야 했던 것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교사와 교수들을 척결해야 할 수구적인 개혁 대상으로 간주하며 갖가지 모욕을 주어가면서 밀어붙인 업무 추진 방식 때문이다. 예를 들어, BK 21 계획을 6월 초에 내보내고 공모 시한을 불과 한 달 반 뒤인 7월 20일로 정했다. 게다가 준비 기간에 방학이 끼어 추진에 문제가 예상되자 각 대학은 비상연락망을 동원해 교수들을 소집해 프로그램을 준비하라고 지시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이처럼 21세기 한국의 연구를 좌우할 중대 사업을 5분 대기조식 졸속으로 추진한 것이 바로 이 의원이다. 이런 식으로 총리직을 수행할 것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또 다른 문제는 노 대통령과의 '콤비'이다. 노 대통령은 주장이 강하고 전투적인 스타일이기 때문에 한명숙 의원처럼 개혁적이면서도 부드럽고 덕이 있는 사람이 총리를 해야 서로 보완하면서 국정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다. 그러나 이 의원은 노 대통령과 비슷한 스타일이라 총리로 적합할지 의문이다.
손호철/서강대 정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