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은 곧 국가다." 절대군주의 전형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태양왕(太陽王) 루이 14세(1638∼1715)가 말했다지만, 사실은 비방자들이 지어낸 말이라 한다. 72년 동안이나 왕위에 있었지만 죽음을 앞두고 한 말은 전혀 다르단다. "나는 죽는다. 하지만 국가는 영원히 존속될 것이다.""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 코르시카 섬 출신이지만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황제의 칭호를 빼앗아 스스로 황제에 오른 나폴레옹 1세(1769∼1821)의 말이라지만, 그의 어록 어디에도 이런 말은 없다고 한다. 그가 실제로 한 말은 다르단다. "불가능이란 말은 프랑스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국가란 개인의 의지나 코드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 실체임을 루이 14세나 나폴레옹 1세는 실감했을 게다. 연면하는 국가 역사에 비하면 왕이나 황제라는 존재가 얼마나 왜소한가. 그들은 자신이나 자신의 치적을 내세우기보다는 국가의 저력을 믿고자 했다. 자신들은 사라지지만 국가는 위기와 역경을 극복해 영원하기를 염원했다.
우리 대통령은 6월 7일 제17대 국회 연설에서 말했다. "지금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위기 관리는 과장된 위기론을 잠재우는 것이다." 역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심정이었겠지만 어째서 마치 함구령처럼 들리는 걸까.
위기(危機)란 위험한 고비다. 여태까지 유효했던 행동양식으로는 쉽게 대처할 수 없는 적응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누구에게나 위기의식이 생기기 마련이다. 위기에 해당하는 영어 crisis에는 '나누다' '구분하다' '임계상태'라는 뜻이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유례를 보기 힘든 변화와 개혁의 기로에 서 있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전환기의 분수령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위기의식이 팽배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 않은가. 경제위기만이 위기가 아니다.
전향적으로 인식한다면 위기란 새로운 도전의 호기이다. 역사란 위기를 극복하고 자유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제1차 대전 이후 슈펭글러는 저서 '서구의 몰락'을 앞세워 위기론을 부추겼지만 서구는 지금 어떤 상황인가. 국가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면서 우리 국민 특유의 저력 결집을 호소한다면 위기론은 저절로 사그라지지 않겠는가. 역경에 '대인호변 소인혁면(大人虎變 小人革面)'이라 했다. 소인은 낯빛 바꾸기에 급급하지만 대인은 호랑이처럼 선명하게 변화한다. 자신의 생각부터 일신해 스스로 거듭나는 대인이 새삼 그립다.
/조영일 연세대 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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