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기는 하지만 설마 나, 수다쟁이 당나귀 동키를 잊어버린 건 아니겠죠? 그동안 일이 꽤 많았어요. 슈렉과 피오나가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왔죠. 사실 이 엽기 닭살 커플의 애정행각을 혼자 보기는 아깝네요. 피오나의 부모인 '겁나 먼 왕국'의 왕과 왕비가 결혼축하파티를 열어준다고 초대했는데, 슈렉의 첫 처가 방문에 제가 당연히 동행해야 겠죠."
벌써 3년이나 됐나. 드림웍스의 3D애니메이션 ‘슈렉’의 충격파는 엄청났다. 디즈니로 대표되는‘미는 곧 선’이라는 동화의 굳은 신념을 단숨에 무너뜨린 데다, 엽기 코드는 대중문화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신분상승에 성공했다. ‘슈렉2’의 발상은 1편 만큼 통쾌하지도 천재적이지는 않다. 어차피 앞으로도 ‘슈렉’시리즈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상만을 심어주는 동화의 판에 박힌 공식을 뒤엎는다’는 태생적 장점을 계승할 것이기 때문. 그러나 유머와 패러디 감각만은 전편 이상이다.
‘슈렉2’는 초록 괴물 슈렉(마이클 마이어스)이 피오나 공주(카메론 디아즈)의 마법의 저주를 풀어준 것이 엄청난 실수였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동화에서처럼 ‘잘생긴 백마 탄 왕자의 키스를 받고, 마법의 저주에서 풀려나 영원히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야’하는 피오나의 운명을 억지로 뒤죽박죽으로 만든 건 아닌가.
인어공주의 키스 세례에도, 동키(에디 머피)의 방해에도 금 갈줄 모르던 슈렉과 피오나. 미처 생각치 못했던 ‘가족’이 등장하면서 그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처가의 초대를 받아 겁나 먼 왕국에 도착하지만 둘을 맞는 시선은 따갑다. 피오나의 아버지는 예정된 시나리오와 달리 괴물로 변해버린 딸을 보고는 원래 시나리오대로 금발의 프린스 차밍(루퍼트 에버렛)과 피오나를 엮어주려 하고, 요정 대모(제니퍼 선더스)는 아들 프린스 차밍을 피오나와 결합시켜 왕국을 이어받게 하려고 음모를 꾸민다.
‘슈렉’의 매력이기도 한 패러디는 이번에도 절묘하다. 영화, 광고, 라이프스타일 등 패러디의 원전은 상상력의 한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고 이질적이지만, 아기자기하게 적재적소에 배치한 듯한 느낌이다. 조롱과 야유의 대상이 1편에서는 디즈니였으나, 2편은 ‘꿈의 공장’ 할리우드와 이미지의 허상을 좇는 소비대중문화 사회로까지 확장했다.
부의 상징인 베벌리힐스를 빼다박은 겁나 먼 왕국은 요정 대모가 왕을 볼모로 삼아 멋대로 주무르며 탐욕과 같은 허황된 가치를 주입하는 곳. 유명한 ‘할리우드’ 입간판을 ‘겁나 먼 왕국’의 그것으로 대치했고, 결혼축하파티는 아카데미시상식 중계를 연상시킨다. 베르사체리(베르사체), 파벅스(스타벅스), 버거프린스(버거킹) 등의 브랜드가 늘어선 왕국의 로미오 거리는 로데오 거리의 패러디다.
역경에 처한 슈렉의 동반자로 새로 등장한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슈렉의 암살범으로 고용됐으나 그에게 동화되고 마는 ‘장화신은 고양이’(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천진난만한 눈망울로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 순간이야말로 이 작품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될 것 같다. 존 클리스, 줄리 앤드루스도 피오나의 부모의 목소리 연기로 출연했다.
‘슈렉2’는 애니메이션으로는 드물게 1,2편이 모두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6일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3억1,452만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려 애니메이션 사상 미국 최고 흥행작인 ‘니모를 찾아서’의 기록(3억4,000만 달러)을 곧 갈아치울 전망이다.
상업적인 할리우드를 풍자하면서도 매우 상업적인 할리우드 산물이기도 하다. ‘그 또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변해지고 싶다’는 슈렉과 피오나의 사랑은 또 한번 헤피엔딩을 맞는다. 그래서‘슈렉2’는 동화의 환상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된, 어른들을 위해 할리우드가 만든 또 하나의 상업적인 동화일지도 모른다. 18일 개봉. 전체관람가.
/문향란기자 iami@hk.co.kr
●"가족에 대해 말하고싶어"/영화 '슈렉2' 감독 앤드류 에덤스
1,2편 모두 감독을 맡은 앤드류 애덤슨. 물론 혼자는 아니다. 2편은 켈리 어즈베리, 콘래드 버논과 공동으로 감독했다. 지난 5월 7일, 미국 개봉에 앞서 LA 에서 열린 시사회장에서 만난 그는 2편을 “가족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결혼이 당사자 뿐만 아니라 가족간의 결합이라는 점, 그리고 슈렉, 피오나, 동키로 이뤄진 일종의 가족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결혼 이후의 스토리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슈렉의 부모가 늪지를 방문하는 상황으로 설정했으나 전편과 차별점을 두기 위해 슈렉 부부가 피오나 부모의 성을 방문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했다.
애덤슨은 “‘슈렉’의 매력은 애니메이션 관객층을 어른들로도 넓혔고, 단지 재미있고 즐기는 작품에서 그치지않고 메시지를 마음으로 느끼게 만든 점에 있다”며 “‘슈렉2’를 통해 편견을 버리고 현재의 상황을 수용하고, 올바른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컴퓨터 애니메이터 출신으로 ‘트루 라이즈’ ‘배트맨 포에버’ 등의 시각효과감독을 지낸 애덤슨은 ‘나니아 연대기’로 실사영화 감독 데뷔를 준비중이다.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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