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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35>오리건 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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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35>오리건 협정

입력
2004.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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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6월15일 당시 캐나다의 식민모국 영국과 미합중국 사이에 오리건 협정이 체결돼 이 지역의 영유권을 둘러싼 두 나라의 갈등이 마무리됐다. 이로써 북위 49도선을 기준으로 하는 오늘날의 미국-캐나다 국경이 확정됐다. 영국과 미국 사이에 불화를 낳고 있던 오리건 지역은 오늘날의 미국 오리건주만이 아니라 로키산맥에서 태평양 연안 사이의 북위 42도∼54도41분을 망라하는 광대한 땅을 가리켰다.정착민이 거의 없었던 오리건 지역은 1818년 영국과 미국이 맺은 조약 이후 두 나라의 공동 영토로 인정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뒤 20여 년 동안 미국인 이주자들을 태운 역마차가 끊임 없이 오리건으로 향했고, 1844년까지 약 5천 명의 미국인들이 이 지역에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바로 그 해 대통령 선거에서 오리건 전역의 영토권을 주장한 민주당 후보 제임스 녹스 포크를 미국 유권자들이 백악관의 새 입주자로 뽑으면서 영국과 미국 사이에는 긴장이 일기 시작했다. 애국주의적 신문들도 이내 포크의 노선을 거들었다. 1845년 12월 '뉴욕 모닝 뉴스'의 편집인 존 설리번은 "대륙 전체에 자유와 연방 정부의 위대한 경험을 퍼뜨리는 것이 미합중국의 명백한 운명"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명백한 운명'에 따라 애국주의 신문들이 총궐기해 "54도40분 아니면 전쟁을!"을 외쳤다.

미국의 이 난데없는 주장에 영국 본토의 여론이 악화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는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국내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던 영국 총리 로버트 필은 전쟁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미국측에 49도선을 타협안으로 제시했다. 텍사스 병합으로 멕시코와 갈등을 빚고 있던 포크 역시 영국과의 전쟁이 부담스러웠다. 상원도 영국안의 수락을 권고했다. 이로써 자를 대고 그린 듯한 미국-캐나다 국경이 결정됐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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