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백두산 하나. 한라산 하나 나와라. 감명도(통신음 크기와 선명도)는 어떤가." "여기는 한라산 하나. 감도를 높여라."남북해군 간 역사적인 첫 교신이 이뤄진 14일 오전 9시 서해 북방한계선(NLL)상. 북측 경비정의 전파가 짙은 안개를 뚫고 남측 참수리328호 고속정에 도착했다. 적대감만 감돌던 서해에서 남북 해군이 서로에 대한 오해를 접고 같은 언어로 교감을 나누기까지는 1953년 정전 이후 51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99년 6월 연평해전과 2002년 6월 서해교전 당시 총부리를 겨눴던 남측 2함대사령부와 북측 서해함대사령부 소속 함정들이 우발충돌 방지를 위한 첫 교신에 성공했다.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에 따라 15일부터 전면 실시되는 양측 함정 간 공동주파수 사용 및 중국 어선 불법조업현황 정보교환에 앞서 '한라산(남측)'과 '백두산(북측)'이라는 호출부호로 시험교신을 한 것이다.
남북은 NLL 인근을 각각 5개 수역으로 나눠 1구역인 남측 연평도_북측 육도 부근에서 국제상선공통망을 이용, 오전 9시부터 15분간 교신을 한 후 2~5구역에서 잇따라 시험교신을 마쳤다.900여m 거리를 두고 교신한 남측 참수리328호와 북측 함정은 공동주파수 사용이 불가능한 상황에 대비, 약속된 보조통신수단인 깃발과 불빛신호로도 의사를 주고 받았다.
양측은 이날 오전 9시 경의선 유선통신선로를 통해 서해상 중국어선의 불법조업 상황을 가정한 가상정보도 교환했다. 15일부터는 매일 오전 9시 실제 정보를 주고 받는다.
해상에서의 긴장완화 조치와 함께 15일 0시 군사분계선(MDL) 지역에서의 확성기 등을 통한 선전도 전면 중단됐다. 14일 오후 11시50분 마지막으로 방송된 남측 '자유의 소리'프로그램은 "우리 방송은 62년부터 인민군 여러분의 마음을 여는 역할을 해왔다"며 "평화통일을 기원하면서 그 동안 자유의 소리를 들어준 인민군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작별인사를 했다. 같은 시간 전선지역의 우리측 대형 전광판에는 '평화ㆍ화해ㆍ협력'이라는 문구가 최후의 빛을 발했다.
선전 중지를 앞둔 이날 오후 서부전선 육군 전진부대 대북방송실 담당 장병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한 병사는 "남북화해의 전기가 마련되는 방송 중단을 현장에서 지켜보게 돼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대형 스피커를 통해 매일 15시간씩 내보냈던 뉴스와 가요프로그램 등 대북방송은 이날 밤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서해=공동취재단ㆍ김정호 기자 azure@hk.co.kr
도라산전망대=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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