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대선자금과 관련, 법정에 선 국내 대표 기업인들이 탤런트 뺨치는 연기와 이중적인 태도, 상식 밖의 대답 등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9일 서울중앙지법의 한 법정.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피고인석에 앉은 국내 굴지의 모 건설회사 사장 R씨는 변호인의 질문이 시작되자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예"라고만 짧게 대답했다. 그러나 형량을 줄이기 위한 '정상 참작용' 질문이 막 시작된 순간, R씨는 갑자기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눈물에 방청석은 술렁였다. 지금까지 기업을 경영하면서 겪었던 애로 사항, 노모를 비롯한 가족들의 고통을 들먹이면서 R씨는 한동안 '울음 전술'을 이어갔다. 하지만 재판이 끝나고 판사가 퇴정하자 R씨의 표정은 다시 싹 달라졌다. 자신을 수사했던 검사와 반갑게 악수를 나누기도 하더니 환하게 웃으며 법정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같은 법정에 선 또 다른 건설회사 회장 L씨는 고령에다 지병을 앓고 있어 언뜻 보기에도 힘겨운 기색이 역력했다. 검사의 질문에 방청객이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작고 불분명한 목소리로 겨우 답할 뿐이었다. 그러나 변호인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내역과 그 이유를 묻자 목소리가 또렷해지면서 막힘 없는 일장 설명이 이어졌다.
그룹 회장을 보호하기 위해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을 뻔뻔하게 해대는 경우도 적지 않다. 100억원대의 돈을 '차떼기'로 전달한 LG와 현대자동차, 김운용씨에게 7억원을 건넨 삼성의 고위 임원들은 법정에서 하나같이 "불법자금 전달 사실을 회장에게 보고한 적 없다"고 답했다.
/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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