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이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면 경제가 발전하는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는 경제학 뿐이다. 오랜 관찰과 연구축적의 결과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몇 가지 요소가 한 나라의 경제발전에 필수적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첫째, 빠른 경제성장과 높은 소득을 누리는 나라일수록 양질의 인적자본과 물적자본이 풍부하다. 인적자본은 교육제도의 산물이고, 물적자본은 기술투자와 설비투자의 결과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21세기 기술혁명과 세계경제 추세에 적합한 인적자원을 양성하고 있지 못하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심화하고 있고 반시장정서와 반세계화 정서에 물든 세대를 양성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기술과 설비투자는 수년째 거의 제자리 걸음이다. 그나마 있는 설비마저 해외로 이전하고 있다.
둘째, 전체 인구 중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아야 한다. 경제적으로 남의 소득에 의존해 사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경제는 활력을 상실한다. 높은 실업률과 인구의 고령화가 성장잠재력 약화 요인이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셋째, 각종 경제제도와 정책이 사람들이 생산적 활동에 몰두하도록 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 기업인이나 근로자나 모두 생산적 활동으로 돈을 벌기보다는 재테크나 남의 돈을 이전 받아 사는 것에 더 관심을 쏟는다면 그 경제는 활력을 상실한다. 지금 투기와 재테크, 로또 복권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우리경제가 활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뜻이다. 갈라먹기와 뜯어먹기 풍조의 확산도 마찬가지다.
넷째, 경제가 개방되고 시장이 경쟁적일수록 그 나라의 경쟁력과 생산성은 높아진다. 지금 노조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수많은 이익집단들은 한결같이 개방과 경쟁을 거부하고 있다. 여기엔 기업인이나 교수, 영화배우들도 예외는 아니다. 문제는 정부가 이들과의 힘겨루기에서 밀리고 있다는 점이다.
다섯째, 한 나라가 가지고 있는 생산요소가 얼마나 생산적 용도에 효율적으로 투입되는가다. 그리고 그것은 생산요소가 시장원리에 따라 배분되는가 아니면 정치사회적 논리에 따라 배분되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요소시장은 시장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경직되어 있고 정부의 간섭이 심하다. 그만큼 생산성과 국가경쟁력이 저하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한국 경제가 침체되고 성장잠재력에 문제가 생긴 것은 바로 이런 조건들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 노사정을 막론하고 온 국민이 경제를 다시 살리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면, 바로 이런 경제 성장 조건들의 회복에 장애가 되는 관행과 제도를 타파하는 것이 개혁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일각에서 성장과 개혁 중 무엇이 더 우선인가를 놓고 이상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성장을 중시하면 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이고, 개혁을 위해서는 성장을 희생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또 성장을 강조하면 보수노선이고 분배를 강조하면 진보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앞으로 가자는 진보에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진보의 반대말이 퇴보인데, 누가 스스로 퇴보를 자처 하겠는가. 잘못된 것을 바꾸자는 것이 개혁인데 여기에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어디로 진보하자는 것인지, 또 바꾸고 나면 무엇이 전보다 좋아지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앞으로 가본들 벼랑 끝 막다른 길에 다다른다면 그것은 진보가 아니고, 바꾸고 보니 전보다 더 불편하고 못살게 되었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다. 국민생활을 풍요롭게 해주고 국민들이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고 살도록 해주는 것 이상의 진보와 개혁이 어디 있겠는가.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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