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박원명교수의 멘털 클리닉/'술 의존은 병' 인정해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박원명교수의 멘털 클리닉/'술 의존은 병' 인정해야

입력
2004.06.14 00:00
0 0

얼마 전 40대 후반의 가정주부가 “남편 문제를 상담하고 싶다”며 진료실로 찾아왔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남편은 결혼할 때부터 술을 좋아했고 직장에서도 술자리가 잦았다고 한다.그런데 2년 전 갑자기 명예퇴직한 뒤 소일거리를 찾지못한 탓인지 남편의 술 마시는 양과 횟수가 부쩍 늘어나더니 1년 전부터 거의 매일 술에 취하고 이따금 자신에게 폭력까지 휘두른다는 것이다. 그녀는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얘기를 들었을 때 필자의 마음은 답답해졌다. 정작 환자인 남편은 오지 않고 부인이 상담하러 병원에 온 이런 경우는 대부분 환자가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치료도 완강히 거부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알코올 의존을 비롯해 모든 약물 의존은 자신의 병을 인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병의 인정하느냐에 따라 알코올 의존의 극복 여부, 즉 인생 성패가 거의 결정되기 때문이다.

정신과 질환 중 특히 알코올 의존은 환자가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알코올 의존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그 중 하나의 원인을 제공하는데, ‘알코올 의존 환자는 의지가 약해 술을 못 끊는다’,‘정신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등과 같은 사회적 인식은 전혀 근거없는 편견이다. 알코올 의존은 의지가 약하거나 정신문제가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찾아올 수 있고, 한 번 의존되면 의지로만 극복할 수 없다.

보통 알코올 중독으로 더 잘 알려진 알코올 의존은 반복되는 음주로 정신과 육체가 황폐해지고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어지는 경우다. 술 마신 다음 날 숙취가 심하거나, 피곤해 직장에 늦는다거나 술 때문에 부부싸움을 자주 한다면 초기 알코올 의존을 의심해봐야 한다.

이에 해당하는 독자들은 ‘에이, 이런 사소한 것이 무슨 초기 알코올 의존이야’ 라고 코웃음을 칠지 모르지만 이것이 바로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아 병을 키우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알코올 의존은 혈액검사나 방사선 사진과 같은 것으로 진단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니다. 정신과 전문의가 환자 및 가족이 제공하는 정보를 종합해 판단하는 것이 알코올 의존을 진단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환자와 가족이 알코올 의존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우선 자신의 문제를 인정해 모두 한마음으로 치료에 동참할 때 비로소 이를 치유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도 방심하지 말고 지금 술을 즐기는 것인지, 아니면 술에 의존하는 것인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술이 자신의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면 가족과 주위 사람, 또는 전문의와 이 문제를 상의하는 것이 좋다. 술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주위 충고를 무시하는 것은 남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을 속여 자신을 망치기 때문이다.

박원명/가톨릭대 의대 성모병원 정신과 교수

입력시간 : 2004-06-13 13:52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