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착기가 육중한 몸을 움직여 팔을 뻗는다. ‘윙’ 하는 굉음과 함께 후려칠 듯 크게 뻗은 팔은 이내 뾰족한 손톱을 세워 억세게 땅을 할퀴고, 손톱이 박힌 땅이 움푹 패이면 그 옆으로는 차곡차곡 흙이 쌓인다. 수십대의 굴착기들이 저마다의 구령에 맞춰 그치지 않고 몸을 움직이니 이내 바닥 곳곳에 구멍이 뻥뻥 뚫린다. ‘서울의 거대한 허파’. 뚝섬 ‘서울숲’의 나무들이 심어질 자리다.
서울시민에게도 ‘센트럴파크’를
12일 오전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1가에 위치한 뚝섬 체육공원. 초여름 땡볕 아래 축구와 자전거를 즐기는 주민들로 가득한 운동장 한켠에서는 서울숲 조성공사가 한창이다. 시가 성수동 1가 685 일대 35만평에 조성하는 서울숲이 공사에 들어간 것은 지난 4월6일. 서민 골프장으로 사랑 받아왔던 뚝섬 퍼블릭 골프장의 펜스를 철거하는 것으로 시작된 공사는 현재 20% 정도의 공정율을 보이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 공업지대의 하나인 뚝섬 일대는 우리나라 ‘오락가락 행정’의 표본이었다. 가내수공업단지와 자동차 정비소 등이 밀집해 있는 이 지역에 복합문화관광단지가 조성된다느니 차이나타운이 들어선다느니 말이 끊이지 않았다. 서울시청의 새 청사와 프로야구 돔구장 후보지로도 거론됐다. 개발만 했다 하면 3조원 정도의 이익이 예상되는 곳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결론은 ‘숲’이었다. 공원 하나 없는 서울 동북부의 열악한 환경도 뚝섬의 ‘용도변경’에 한 몫을 했지만 당장 눈앞의 3조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도 이젠 숨 좀 쉬며 살아보자는 데 생각이 미친 서울시의 과감한 결단이었다. “서울에도 뉴욕의 ‘센트럴파크’ 같은 공원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배호영 서울숲조경반장은 “대부분의 도심 공원이 유료 테마파크나 시설물 위주인 현실에서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되는 생태공간이 서울 한복판에 생겨난다는 게 중요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5개 테마별로 다양하게
‘서울의 센트럴파크’를 만드는 데 드는 돈은 약 2,500억원. 나무는 200억여원을 들여 104종 42만 그루를 심는다. 어린 묘목을 심는 게 아니라 직경 30~40㎝에 높이 20m 가량 되는 커다란 나무들을 옮겨 심는 것이어서 내년 5월 문을 열자마자 시민들은 울창한 숲을 만끽할 수 있다. 나무는 참나무, 서나무, 산벚나무 등 우리나라 고유수종을 중심으로 중부지방에서 옮겨다 심는다.
지난해 3월 실시한 현상공모를 바탕으로 수립된 서울숲 종합계획안에 따르면 숲은 5개의 테마로 나뉘어 조성된다. 잔디광장으로 조성되는 서울숲 광장과 야외무대, 인공연못, 축구장, 열린 아틀리에 등 시민들이 다양한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는 ‘뚝섬 문화예술공원’이 제1 테마. 분수가 설치된 인공연못 옆으로는 서울숲 내 유일한 위락시설인 호텔식 카페테리아도 마련돼 숲과 연못을 감상하며 식사를 즐길 수 있게 했다.
야생동물이 서식할 수 있도록 자연 그대로의 숲을 재현한 ‘뚝섬 생태숲’은 두 번째 테마이자 서울숲의 핵심. 서울숲 전체에서도 가장 울창한 이곳엔 꽃사슴, 고라니, 노루 등이 방사되며, 사람의 출입은 제한된다. 대신 시민들은 생태숲 위로 놓인 보행가교를 걸으며 이들 동물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높이 1~7m, 길이 482m의 최첨단 보행가교는 한강 선착장과 바로 연결돼 유람선을 타고 서울숲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현 유수지 자리에 생기는 ‘습지생태원’은 조류관찰대와 환경놀이터, 정수식물원 등으로 구성되는 제3 테마. 전시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갤러리정원과 온실, 야생초 화원, 이벤트마당 등이 자리잡는 네 번째 테마 ‘체험학습원’은 각종 식물의 생태를 학습하고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진다. 마지막 제5 테마는 서울숲 선착장과 자전거도로 등이 설치되는 ‘한강수변공원’이다.
1년새 집값 훌쩍, 그러나…
뚝섬에 들어서는 서울숲이 가장 반가운 사람들은 성수동 주민들일 것이다. 지난 1년새 집값도 훌쩍 뛰어 10년이 넘은 낡은 주택도 평당 1,500만원씩 나간다. 서울숲 조망권이 확보되는 성수동 1가 일대 아파트는 거의 1억원 가까이 올랐다.
그렇지만 주민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승마장, 축구장, 농구장, 게이트볼장 등 대부분의 체육시설이 서울숲 내 주택가 인접한 곳에 그대로 남게 되면서 소음과 악취 등으로 고생해온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지난 7일에는 주민 1,366명의 이름으로 축구장과 승마장의 이전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시에 제출했다.
주민 김경문(46)씨는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사람들로 붐비는 축구장 때문에 주민들이 소음, 먼지에 시달려왔다”며 “서울시가 주민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정미영(39ㆍ여)씨도 “기껏 숲을 만들어 봤자 승마장을 그대로 두면 진동하는 말똥냄새에 모기, 파리까지 들끓을 텐데 과연 쾌적한 휴식이 가능하겠느냐”고 거들었다.
그러나 근린공원엔 생활체육기능도 중요하다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다. 배호영 조경반장은 “승마장은 당분간만 서울숲 내에 남겨두고 장기적으로 도봉구 도봉동으로 옮기기로 확정한 상태지만, 이용객이 많은 축구장은 반대 민원이 많아 없애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주민들 요구에 난색을 표했다. 대신 시는 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나대지를 사용하고 있는 5개 축구장을 1개로 줄여 인조잔디를 깔기로 결정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뚝섬 역세권엔 첨단건물 건설 관광타운으로
서울숲 부지 35만평 가운데 2만6,000평은 역세권으로 개발된다. 서울숲을 찾는 시민들에게 먹거리와 볼거리 등을 한데 갖춘 문화ㆍ편의시설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시가 지난 3월 발표한 ‘뚝섬역세권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2008년 개통되는 분당선 성수역 주변에 대형 주상복합건물, 호텔, 컨벤션센터, 오피스텔 등이 들어서면 이 일대는 녹지공간과 첨단 복합건물이 어우러지는 서울의 새로운 ‘엘도라도’로 부상하게 될 전망이다.
녹지지역에서 상업지역으로 용도를 바꿔 모두 4개 구역으로 개발되는 이곳은 각 구역마다 지상3층 이하 저층부에는 공연ㆍ전시ㆍ문화ㆍ체육ㆍ상업시설이, 상층부에는 주상복합ㆍ호텔ㆍ업무시설 등이 들어서는 15~20층 규모의 타워형 복합건물로 만들어지는 게 특징. 시 관계자는 “서울숲 조성에 앞서 지난 2001년 추진했다 백지화한 뚝섬 문화관광타운이 이곳 역세권에 집약적으로 들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시설 위주의 2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 주상복합 건물엔 주거용 공동주택도 1,000여 가구 들어선다. 이곳은 2호선 뚝섬역과 1호선 응봉역이 인접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는 게 최대 장점. 2008년 왕십리역(2ㆍ5호선)과 선릉역(2호선ㆍ분당선)을 잇는 성수역까지 개통되면 환경, 시설, 교통 3박자를 고루 갖춘 서울의 요지로 확실하게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는 올 하반기부터 민간업체에 토지를 공개매각하고 2006년 초부터 개발에 착수, 2008년께 사업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뚝섬 한 켠에 자리잡고 있어 서울숲 조성의 걸림돌이 됐던 삼표 레미콘 공장도 이전부지를 찾았다. 남측 레미콘 공장은 공원으로 묶어 용도를 확정, 보상작업을 진행 중에 있고, 북측 공장은 강서쪽으로의 이전이 거의 확정됐다. 시는 역세권 개발과 동시에 성수동 공장지대 재개발도 검토하고 있다.
/박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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