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치동에 사는 주부 박모(42)씨는 3년 전부터 여름방학이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를 미국이나 캐나다에 어학연수를 보내 왔다. 4주 프로그램에 400만∼500만원대의 가격이 부담스러웠지만, 자녀들의 영어 교육을 위해 조기 유학은 보내지 못할 망정 그 정도의 투자는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남편의 수입이 갈수록 줄어 올해엔 국내 연수프로그램으로 대체할 생각이다. 박씨는 "주위에 보면 비용이 절반도 안 되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의 영어캠프나 국내 연수 프로그램을 알아보는 학부모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경기 불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홀로 성장'을 구가하던 해외 어학연수에도 제동이 걸렸다.
경기 침체로 위축된 사회 분위기가 부유층의 지갑까지 걸어 잠그면서 해외로 단기 어학연수를 떠나는 초·중·고 학생들이 지난해 1만여명에서 올해 6,000명 선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13일 어학연수 알선업계에 따르면 올 여름방학을 이용해 단기 어학연수를 떠나는 학생들이 지난해에 비해 30∼40%가량 줄었다. 이에 따라 통상 6월 초 마감하는 모집기간을 6월 말에서 7월 초로 연장하는 등 학생 모집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 홈스테이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A사는 올해 모집기간을 5월 말에서 6월 말로 1개월 연장했다. 지난해의 경우 10∼15명씩 묶어 10그룹을 쉽게 모집했으나, 올해에는 6월 중순이 되도록 5그룹밖에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뉴질랜드 등의 가정에서 숙식하며 영어공부를 하는 이 프로그램의 참가비는 400만원대. A사 관계자는 "지속적인 경기 침체에도 꿈쩍 않고 버티던 해외연수 인원이 지난해 겨울방학부터 줄기 시작했다"며 "올 여름에는 처음부터 참가인원을 줄여 잡긴 했으나 이렇게 한산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해외 어학연수 전문인 B사의 경우 통상 비자 문제로 6월 초에 모집을 마감하고 7월 중순 방학과 함께 출발하는데, 올해는 지난해(80명)의 절반도 채우지 못해 이달 25일까지 모집기간을 연장했다. C사와 D사도 지난해에 비해 모집인원이 30% 이상 줄었다. C사 관계자는 "불과 2∼3년 전만 해도 700만원대의 고가 상품이 불티나게 팔렸지만 요즘은 교육내용을 새롭게 보강한 알뜰형 기획상품을 내놓아도 좀처럼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최근에는 100만∼200만원대의 국내 영어캠프나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 어학연수에 대한 문의가 늘고 있다.
민우기 ENI국제교류센터 대표는 "IMF 체제 이후 부유층은 물론, 중산층도 400만∼600만원의 비용을 부담하며 해외연수에 참여했지만 현재와 같은 경기 상황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단기 해외연수 붐은 이제 끝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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