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순·미선 2주기 추모대회와 이라크 파병철회 범국민대회'가 열린 12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 사회자는 이번 촛불집회를 끝으로 여중생범대위의 발전적 해체를 선언한 뒤 "이라크 파병철회 청원서명운동에서 10만명이 동참했다"고 밝혔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촛불의 힘으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국민을 이라크로 보내려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8월말까지 3,000여명의 자이툰 부대를 이라크 북부 아르빌주에 파병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최종발표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한미관계의 불평등 시정을 요구하며 일어섰던 국민적 열기가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으로 옮겨 붙고 있고, 여당 내에서조차 파병재검토 결의안이 추진되면서 갈수록 곤혹스러운 처지다.
지난해 7월 이라크 추가파병안이 처음 국회에 제출된 이래 정부의 일관된 입장은 '한미동맹과 이라크의 재건과 평화를 위해 비전투병을 파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미국의 일방적 침략전쟁에 반대한다'는 기치 아래 속속 새로운 명분들이 추가됐다. 참여연대에선 추가파병이 단행될 경우 "한국은 세계3위의 전범국가가 된다"는 성토마저 나온다. 이라크 파병동의안은 국회에서 3차례나 본회의 통과가 무산됐고 지리한 논쟁 끝에 올해 2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또다시 파병지가 변경되는 등 파행을 겪었다. 국제적으로도 스페인과 온두라스 등이 이라크에서 철군하면서 파병론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라크 파병이 보혁대결의 고지쟁탈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전경련은 이라크 파병에 따른 수출 및 해외건설 등의 경제효과가 2008년까지 약100억달러(12조원)라는 수치까지 제시하면서 파병에 힘을 보탰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라크 추가파병이 단행된 이후의 보혁 분열양상이 대외신인도 등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이라크 파병 방침을 정당화할 수 있는 새로운 논리 개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내여론은 물론, 미국과 국제사회에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파병의 이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라크에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특히 유엔에서 다국적군의 활동을 보장한 이라크 새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함으로써 정부의 운신 폭은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이라크 정세와 한미관계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서 앵무새처럼 같은 주장을 펴서는 설득력을 갖출 수 없다. 박철희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베트남전 참전에 공과가 있지만, 당시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새로운 국제질서의 전개에 대응하면서 역사적인 관점으로 국민의 선택을 요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 본보, 국민의식 여론조사
명분과 실리를 놓고 고심하던 이라크 추가파병에 대한 국민여론이 몇 개월 사이에 다시 급변했다.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파문, 팔루자 침공사태 이후 새로운 정세는 파병문제에 대한 여론의 줄기를 다시 반대쪽으로 뚜렷하게 바꿔 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출범 1주년인 지난 2월만 해도 찬성 주장이 많았다. 당장 7월부터 병력을 파견할 정부가 이 같은 여론의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한국일보가 창간 50주년을 맞아 7일 미디어리서치에 의뢰,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라크 추가파병에 찬성하는 입장은 41%(전적으로 찬성 12.2%, 대체로 찬성 28.8%)에 그친 반면 반대 입장은 57.5%(대체로 반대 37.3%, 전적으로 반대 20.2%)로 과반수를 훨씬 넘어섰다. 이 같은 결과는 우리 국민이 파병론자들이 내세운 '국익우선론'과 진보진영의 '명분 없는 전쟁론' 사이에서 갈등을 거듭한 끝에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여론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은 지난 2월 23일 본보가 역시 미디어리서치를 통해 실시한 조사 결과와 비교할 때 드러난다.
당시에는 추가파병 찬성이 59.8%(적극 찬성 15.4%, 대체로 찬성 44.3%)로 반대(37.3%)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이라크 정세와 한미관계가 급변함에 따라 국민이 생각하는 국익, 그리고 전쟁 명분 등의 개념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조사에서 추가파병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내전 격화, 테러 등에 따른 한국군 희생을 우려'(48%)하거나 '이라크전쟁은 명분 없는 전쟁'(35.3%)이라는 이유가 많았다. '미군의 포로학대 등으로 국제여론이 나빠지고 있다'는 이유를 댄 사람도 9.9%였다. 파병 반대자 중 여성(57.8%)과 60세 이상(76.4%)은 주로 한국군 희생을 우려했고 20대(40.5%) 30대(42.6%)는 명분없는 전쟁을 주로 우려했다.
찬성론자 중에서도 51.5%는 규모, 주둔지, 부대성격 등 재검토를 요구했고 원래 계획대로 6월에서 8월 중 3,600명 규모로 파병해야 한다는 주장은 47%에 그쳤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파병 이유로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존중하기 때문'(43.4%)이라는 국익론을 들었다.
한편 파병 '반대' 주장은 20대(70.5%) 30대(64.6%) 학생(64.7%) 등의 젊은층과 화이트칼라(64.2%), 대학재학 이상 고학력층(58.9%)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면 '찬성' 비율은 50대(52.4%) 60세 이상(53.7%)과 자영업자(52%)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 세대별, 계층별 인식의 차가 큰 만큼, 이를 좁히고 갈등을 봉합할 정부의 노력이 요구된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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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제언/"평화재건 솔선수범 실용적 대안을 찾자"
17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이라크 추가파병문제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여야의원 91명이 공개적으로 파병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섰고, 급기야 집권당과 청와대가 긴급 조율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추가파병계획은 16대 국회 때 비준된 것인 만큼 만약 이를 17대 국회가 파기할 경우, 한미동맹은 그야말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걱정은 클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비록 이 결정을 후세사가들이 용기 없는 결정이었다고 비판할지 모르지만, 현재로선 한미동맹을 고려하여 파병을 해야만 한다는 게 내 판단"이라고 최근 민노당 지도부와의 회견에서 밝힌바 있다.
그럼에도 이번 조사에서 나타났듯, 반대 여론은 강해지고 있다. 그 근거도 뚜렷하다. 팔루자 사태를 기점으로 미국은 이라크 개입의 정당성을 상실했으며, 특히 주한미군의 일부를 차출키로 한 상황에서 더 이상 명분 없는 전쟁에 참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명분에 대해서도, 제마부대와 서희부대 를 파병한 데다 주한미군의 감축을 감수한 것 정도면 최소한의 의무는 다 했다는 단호한 태도다.
지금까지 파병지연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4월 총선 등의 정치적 일정이 있었고 무엇보다 참여정부는 미국이 원하는 대로 따라온 과거정부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고려들은 미국에게는 의도적인 지연전술로 인식될 수 있다.
앞으로 문제는 이라크 파병으로 인해 나타나는 양국간의 오해와 갈등을 키우는 일이 현시점에서 과연 필요한 일인가에 관한 판단이다. 정부는 파병반대 여론에 대응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3가지 사항을 고려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미국과의 대결 국면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의감을 충족시켜줄지 몰라도, 실익차원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의 목표가 미국과의 동맹을 완전하게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면, 미국의 잘못만을 지적하는 동맹이 되기보다는 그들의 단점을 보완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맹이 되는 것이 실용적인 대안이다.
둘째,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고 있는 한국이 이라크 전후사회의 불안정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에 의해 등 떠밀려 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되 미국이 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평화재건과 안정유지의 모형을 이번 파병을 통해 개발하고자 한다는 자신감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셋째, 노 대통령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동맹에 가치를 두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되 실패한 미국의 안정화 작전의 다음 단계로 평화재건에 대한 한국의 솔선수범을 국제사회가 지지해줄 것을 호소해야 한다. 시민단체도 대안 없는 반대보다는 이라크 재건을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에 초점을 맞춰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홍규덕 숙명여대교수 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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