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다 알려진 악재도 여러 곳에서 한꺼번에 목소리를 내면 엄청난 위력을 지닌 악재로 돌변할 수 있다. 지난 11일 정보기술(IT)주 폭락이 이를 증명한다. 이날 삼성전자와 삼성SDI는 연중 최저가로 장을 마감했다. 하이닉스와 LG전자도 5∼6% 떨어졌다. 프로그램 매도 물량도 많았지만 외국인 투매의 영향도 컸다. 외국계 증권사들로부터 TFT-LCD 가격 하락과 휴대폰 마진율 축소, 낸드플래시메모리 가격 하락 등 기술주 업황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자, 외국계 창구에서 엄청난 물량이 쏟아져 나왔다.
"IT 하드웨어 호황 정점 지나고 있다"
UBS증권은 지난 주말 글로벌 D램 투자의견을 비중 확대에서 중립으로 내렸다. 공급과 재고는 통제되고 있으나 최종 수요부문 추가 상승 모멘텀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주가도 비교적 높아져 부담된다고 판단했다. 골드만삭스도 9일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분야에 대해 단기 전망은 양호하나 투자 가속화 우려를 제기하고 대만 업체들에 대해 투자 의견을 하향 조정했다.
두 달 전부터 일찌감치 기술주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내놓았던 도이치은행은 이날 하반기 성장률 급락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하이테크와 반도체 주식에 대한 차익실현 의견을 제시했다. 또 지난달 7∼10% 하락했던 낸드플래시메모리 고정거래 가격이 이달에 다시 전월비 20% 이상 하락했다고 발표하고, 지난해보다 30% 넘게 가격이 떨어지면 삼성전자의 수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PDP와 LCD 등 디스플레이 업종의 경우 대규모 설비투자로 공급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가격 및 이익률의 급속한 하락이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디스플레이 비중이 높은 삼성SDI와 LG전자 주가가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노키아의 저가 전략에 따른 휴대폰 가격 하락 우려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11일 동부증권 이민희 연구원은 2분기 삼성전자 휴대폰 판매량은 예상치에 도달할 것으로 보이나, 전분기에 27%였던 이 부문 영업이익률은 2분기에 20%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기술주 비관론 득세에 대해 대우증권의 정창원 연구원은 "IT 경기 둔화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비관론이 쏟아지고 있다"면서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4분기부터 실적이 둔화되면서 내년 3분기에 바닥을 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미 다 반영됐다" 긍정론도
그러나 아직까지 긍정론을 버리지 않은 증권사들도 만만치 않게 존재한다. 이달 초 모건스탠리는 3분기후반부터 D램 업황이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관련주들이 반등할 것이라면서, 현재 급락 기간을 매수 기회로 활용하라고 충고했다. 메릴린치증권도 11일 2006년까지 삼성전자가 분기당 4조원선의 영업이익을 창출해낼 것으로 기대하고 매수 의견을 지속한다고 밝혔다.
한화증권의 안성호 연구원은 "업황 둔화 가능성은 6월 고점 시기에 제기돼 이미 주가에 충분히 반영된 상태"라며 "지날 주말 주가 하락은 지나쳤다"고 말했다. 안 연구원은 또 "LCD 패널 가격 하락은 공장을 지을 때부터 예상됐던 것"이라면서 "내년에 LCD TV 가격이 100만원대까지 내려갈 경우 대규모 수요가 창출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비관론에 매몰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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