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가 11일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의 현행 유지 입장을 바꿔 축소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창동 문화부장관은 지난해 11월 김진표 부총리 등 정부 일각에서 스크린쿼터 축소론이 나왔을 때도 축소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었다.문화부는 이날 “최근 영화산업의 활황으로 인해 실험적 영화 등 영화적 다양성이 위축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스크린쿼터 축소 조정 검토의 계기”라고 밝혔다. 스크린쿼터는 현행 146일(40%)와 미국이 요구하는 73일(현행의 20%) 사이로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대책위원회는 “정부의 축소 움직임에 끝까지 투쟁할 방침”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책위 양기환 위원은 “문화관광부 브리핑 내용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스크린쿼터 제는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문화를 보호하려는 훌륭한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오죽하면 EU 등 많은 나라에서 도입하기 위해 벤치마킹을 하겠는가”라며 “16일께 비상회의를 소집해서 영화인들의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양 위원은 “지난 3일 저녁 노무현 대통령이 제3회 국제문화전문가단체(CCD) 서울총회 참가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가진 자리에서 스크린쿼터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져 이에 대한 정부의 공식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이창동 장관에게 면담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에는 미국 영화계와 재계의 줄기찬 압력도 크게 작용했다. 미국 측은 스크린쿼터를 축소하지 않으면 한미투자협정(BIT) 협상 재개가 어렵다고 압박해왔다.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논의는 최근 한국영화가 비약적인 성장을 하면서 올해 1~5월 한국영화 관객점유율이 68.1%까지 치솟는 등 축소 불가론에 맞서는 현실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그러나 문화예술계와 시민단체들은 문화산업은 자유무역에서 예외라는 논리로 영화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어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한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보호막 없는 한국영화" 경쟁력 논란 재연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은 결국 '스크린쿼터가 축소될 경우 한국영화계와 경제계에 미칠 파장'으로 요약된다. 우선 문화관광부 등은 "세계화를 이룬 분야는 모두 보호장치 없이 경쟁에서 이긴 것"이라며 한국영화도 공정경쟁을 통해 발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반대론자들은 "시장점유율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 토종물고기 보호막을 걷어버리면 다시 곤두박질할 수밖에 없다"며 "제작비가 100배 이상 차이 나는 할리우드 영화와 국내 영화는 애초부터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고 반박한다.
스크린쿼터 축소문제와 한미투자협정(BIT)의 연계도 쟁점 사항이다. 연간 5억달러에 달하는 국내 영화시장에서 미국영화의 비중은 2억달러에 불과하지만 대미수출액은 330억달러에 달하는 만큼, 스크린쿼터 축소를 통한 BIT 체결은 한국경제 전반에 이득이 될 것이라는 게 축소론자들의 입장이다. 반면 유지론자들은 "설혹 BIT가 당장의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문화적 정체성과 영혼을 돈과 바꾸자는 경제논리는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