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청어람미디어 발행
일본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 1970년대, 그가 간다(神田) 거리를 순례할 때 나는 청계천을 배회했다. 그 시절 그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삼십대 글쟁이의 시선으로 책방을 훑었지만, 나는 단발머리 십대 문학소녀의 감상으로 주로 시집을 사 모았다. 그는 책방에 한번 나가면 3만엔(당시 우리나라 월급쟁이 몇 달치 월급) 정도의 '거금을 들고' 사냥하듯 책을 포획했다. 한 번의 쇼핑으로 책상 가득 책을 쌓아올렸다니…. 나는 어렵사리 모은 몇 천원을 어떻게든 요령 있게 써 보려고 헌책방을 돌며 이 책 저 책 들었다 놨다를 거듭했다. 김현승의 '절대고독' '견고한 고독'은 그때 건진 책이다.
간다의 쇼센, 산세이도 아넥스, 도쿄도 서점 등에서 전문서적을 찾지 못하면 다치바나 다카시의 발길은 분야별로 책을 갖춘 긴자, 요츠야, 요요기 역 등으로 향했다. 거기서 그는 종교 서적, 좌익 관련문헌 등을 찾아들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나는 여간해서는 종로서적, 동화서적이 있는 종로통으로 진출하지 못했다. 참고서를 사야 한다고 거짓말을 해서 돈을 만들면 비로소 그날이 종로에 가는 날이었다. 최인훈과 신경림과 정현종은 종로에서 만났다.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책더미에 밀리고 치이던 오십대의 다치바나 다카시는 드디어 책의 궁전인 '고양이 빌딩'을 짓고, 수만 권의 책 속에 파묻혀 학문의 모든 영역을 넘나들며 지난 시절보다 더 왕성하게 글을 썼다. 한때 월급의 반 이상을 쏟아 부으며 책을 사댔지만, 남편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라 숱한 책을 포기한 30대의 나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남의 글을 뒷바라지하는 편집자가 되었다.
또 10년이 후딱 지났다. 아사히 신문을 통해 '지(知)의 거인' 인 그를 자주 접했다. 매우 큰 활자로 비중 있게 소개되는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 왠지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에 관해 스크랩을 하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덜컥 청어람미디어에서 그의 책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 손으로 못 낸 것이 못내 아쉽지만 참으로 반가웠다.
그의 여러 책 가운데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를 읽으며 언감생심 그에게는 까마득히 못 미치지만 내가 걷고 싶어하던 길을 걷는 그에게서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책을 선택하는 방법, 효과적인 책읽기에 관한 그의 생각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난해한 번역서는 오역을 의심하라."
/강옥순·한길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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