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똥 싼 할머니 이옥수 글. 김병호 그림. 시공주니어● 할머니 페터 헤르틀링 글. 박양규 옮김. 비룡소
며칠 전 서울도서전시회에서 손주들에게 해 줄 이야기 밑천이 떨어져 책을 산다는 한 할머니를 만났다. 커가며 점점 멀어지는 애들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어 다니러 오면 책을 읽어주는데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인 손주들에게 효과 만점이라고 했다. 심지어 과학책 읽기에 대한 강연도 들을 정도로 노력하는 그 할머니를 보니 어린이 책에 나타난 할머니의 모습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초등학생을 위한 읽기 책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정형화되어 있었다. 먼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들 집으로 이사하면서 생기는 갈등을 그리는 책이 많았다. 빠듯한 살림과 작은 집, 그래서 할머니와 한 방을 쓰는 손녀의 불만, 고부간의 갈등에서 오는 부부간의 냉전, 지쳐가는 식구들. 그리고 반전이 일어난다. 할머니가 병이 나거나 양로원에 모신 후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결국 어떤 형태로든 가족 구성원으로 수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다짐하며 끝난다.
간혹 최근의 각박한 현실을 반영하듯 노인을 버리거나 가출을 하도록 방치하는 이야기도 보이고, 점점 많아지는 할아버지와 손자로 이루어진 가정 이야기도 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사는 가정의 할머니는 한결같이 손자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연민과 걱정에 싸여 있다.
대동소이한 내용을 가진 책들은 구성이나 인물과 상황의 묘사가 얼마나 독자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가에서 차이가 나는데 '똥싼 할머니'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모시는 가정의 이야기로 식구들의 입장, 감정묘사와 이야기의 연결이 비교적 자연스럽다. 그러나 어느 책에서도 할머니가 말하는 자신에 대한 말을 들을 수 없다.
그러나 '할머니'에서 칼레 할머니는 다르다. 교통사고로 한 순간에 부모를 잃은 다섯 살짜리 손자를 데려오긴 했지만, 손자가 다 클 때까지 살 수 있을 지에 대한 불안, 크게 변한 학교교육에 적응할 수 있을지 대한 걱정, 손자와 함께 사는 생활은 좋지만 건강이 따라주지 못하는 사실의 인정 등 할머니의 생각을 각 장마다 서두에 별도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둘 만의 세계에 매몰되지 않고 칼레로 하여금 세상에 부딪칠 힘을 키워주려 노력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할머니'를 읽으면 손자 칼레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식구들의 눈에 비친 모습이 아니 스스로가 말하는 할머니의 생각, 마음, 희망, 이런 것들은 더 많이 읽을 때 나의 할머니에 대한 이해도 더 커질 것이다. 도서전에서 만난 할머니도 이렇게 말했다. "손자가 멀어지는 것이 슬프지만 가족에게는 말하지 않는다"고.
강은슬/대구 가톨릭대 도서관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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