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진(margin) 예찬론자다. 세상을 윤택하게 만든 마진 말이다. 토끼사냥에 들어간 돈이 1,000원이면, 사냥꾼은 그놈을 얼마에 내다 팔아야 하는가? 거간쟁이는 말한다. '어이, 1,000원 들여서 토끼 한 마리만 잡나? 더덕도 캐고 노루, 오소리도 잡지 않나? 그 와중에 딴딴해진 자네 허벅지와 스태미너는 어떻게 하구? 1,000원은 과해. 500원만 해도 후하게 치는 게야.' 버스 운전사한테 따진다. 어차피 가는 버스 아니오? 좀 낑겨서 거저 갑시다. 여관에서 따진다. 어차피 빈방, 하루 유(留)할까 하오만…도배하는 친구가 있다. 어떤 집이 여행을 떠나며 키를 맡기더란다. 예산합의는 뒷전이고, 알아서 잘 해주라며 떠났단다. 하루치 품을 그 친구는 사흘이나 했단다. 늘 거래하던 벽지가게 말고도 여러 곳을 신경 써 둘러봤단다. '알아서 잘'이라는 게 긴장감을 조장하더란다. 헌데 정작 그 치는 자기 일한 것에 웃돈을 그야말로 코딱지 만큼만 달랬단다. 그 사람의 신뢰가 좋았더란다.
그러자 그 사람이 외려 웃돈을 철푸덕 안겨주더란다. 깎는 게 능사만은 아닌 듯. 제 값을 주고, 아니 웃돈을 더 쳐주고 제대로 사람을 부리면 또 어떤가? 덜 손해 보려는 게 인지상정이면, 더 이익 보려는 것도 인지상정. 갑과 을은 늘 서로 덜 손해 보려, 서로 더 득 보려 난리고 법원의 문턱은 갈수록 윤을 더해 간다.
살면서 난감하고 또 표정관리 안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내 인건비를 흥정하는 일. 가끔 내 성능과 용량, 소재, 정격출력 등이 모두 정해진 전자제품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열정과 소신, 철학 따위는 그만두고 딱 고만큼의 전기만 먹고 할 수 있는 아웃풋만 노련하게 뱉어낼 게 아닌가?
/고선웅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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