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오페라 '하멜과 산홍'이드디어 초연됐다. 그동안 몇번 공연이 무산되고 연기됐던 곡절 많은 작품이 마침내 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올라가 13일까지(오후 7시30분) 공연된다. 10일 공연을 봤는데, 근래 신작 창작 오페라들의 저조했던 성적표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작품은 긴 산고(産苦)만큼의 가치가 있었다.작곡가 프랑크 마우스의 음악은 대금과 피리, 편종 등 국악기를 사용한 서곡과 아름다운 합창곡으로 시작부터 귀를 사로잡았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좀 더 가볍게 만든 듯한 그의 작품은 개성적이거나 독창적이지는 않았지만, 풍부한 서정성과 난해하지 않은 어법으로 현대 오페라에 부담감을 안고 있는 청중들에게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오케스트라도, 가수들도 청중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대본작가 최종림은 가슴 미어지는 슬픈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서 '하멜 표류기' 그 13년의 기록을 하멜과 조선여인의 사랑 이야기로 압축했다. 오페라의 생리를 매우 잘 파악한 시도였지만, 그의 의도는 그리 성공하지 못했다. 4막에서 하멜과 산홍이 헤어지는 장면이 가슴 저리게 슬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1막과 3막에서 로맨스도, 열띤 사랑의 2중창도 없었던 그들의 모습은 청중에게 사랑으로 형상화되기엔 설득력이 부족했다.
마우스 음악의 단점은 4개의 막이 모두 비슷하다는 데 있다. 네델란드인들이 모여서 노는 4막 1장의 도입부 정도는 좀 더 다이내믹해도 좋지 않을까? 또 2막 효종 앞에 하멜 일행이 잡혀가 유배를 받게 되는 궁궐 장면은 도입부의 산뜻한 느낌과 달리 무척 단조로웠다.
성악진은 만족스러웠다. 하멜 역의 신인 테너 이응진의 중저음부터 고음에 이르는 단단한 가창, 산홍 역의 소프라노 김향란의 노련하고 빼어난 가창과 연기는 객석의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메조 소프라노 배지연의 캐릭터가 살아있는 연실 역도 좋았다. 스크린으로 제주도, 전라남도의 풍광을 보여주며 간단명료하게 배경을 살린 무대도 깨끗하고 세련된 것이었다. 오페라 '하멜과 산홍'은 최근에 만들어진 여러 창작 오페라의 수준을 뛰어넘는 매우 가능성이 높은 작품이다. 계속 다듬어서 원래의 의도대로 세계 오페라 극장에서 자주 연주되는 레퍼토리가 되길 기원한다.
/장일범·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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