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함정임 지음
이마고 발행·1만2,000원
그림 속의 연인들
박정욱 지음
예담 발행·1만6,500원
"4월의 눈부신 햇빛 아래 그녀를 본다. 벌거벗은 채 바위에 앉아 두 무릎을 세워 얼굴을 푹 파묻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나는 이 봄 내내 그렇게 있어야 할 것 같다. 빈센트 반 고흐가 검은 분필로 거칠게 그린 '슬픔'의 그녀는 서른 세 살 처절했던 봄날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가 함정임(40)씨는 고흐의 그림 '슬픔'을 보면서 자신의 깊은 슬픔을 이렇게 내비쳤다. 그녀는 7년 전 서른 세 살의 따스한 봄날, 차갑게 식어버린 남편(소설가 김소진)을 떠나보내면서 묻어두었던 그 지독한 아픔을 그 그림 앞에서 또 한번 고백했다.
그림을 보는 것은 소리없는 대화이다. 그림 속의 인물, 선, 색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자신을 투사하기도 한다. 그런 그림일수록 그 감동의 진폭과 울림은 크고 오래 지속된다. '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과 '그림 속의 연인들'은 미술 작품 속에서 나오는 여인을 소재로 쓴 에세이이다.
미술 속의 여인 이야기라고 하면 그동안 지겹게 우려먹은, 흔하디 흔한 소재이고 이런 종류의 책이 지금까지 여러 권 나왔지만 두 책이 눈길을 붙잡아 두는 이유는 '그림과의 대화' 방식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함씨의 '나를 사로잡는…'은 미술을 짝사랑해온 소설가가 자신의 절절한 체험과 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접근하고 있고, 박씨의 '그림 속의…'는 서양미술에 표현된 사랑의 모습과 메시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정제된 언어로 설명했다.
함씨의 미술 에세이집 발간은 벼르고 벼르던 일이었다. 어린시절 화가를 꿈꾸고, 중학생 때에는 어머니 몰래 화실을 드나들기도 했던 그녀가 10여년 전부터는 오로지 그림을 만나기 위해 해마다 한달씩 유럽의 미술관들을 훑고 다녔다고 한다. 그녀의 책에는 그림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 미술사적 의미 등은 거의 없다. 대신 그림 속의 여인들이 느꼈을 고단한 삶과 희망, 고통과 번민 등을 감성적인 시어와 경쾌한 구성으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을 들춰내고, 현실을 돌아본다. "햇빛이 쏟아지는 찬란한 봄날, 나는 왜 슬픔에 잠긴 그녀를 제일 먼저 기억하는 것일까. 봄은 내 어머니를 빌어 나에게 생명을 주었지만, 봄은 또한 죽음을 빌어 나에게 사랑을 앗아갔다."('고개 숙인 그녀, 나를 울어주는'에서)
그는 한 여인이 선술집 구석에 앉아 술잔을 앞에 두고, 두 어깨를 축 늘이고 앉아있는 모습을 그린 에드가 드가의 '압생트'에서는 서른 아홉 살에 남편을 잃고 자식을 키워낸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또 최초의 여성화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혁명과 예술로 불꽃 튀는 삶을 살았던 프리다 칼로의 그림에서는 영예 뒤에 숨은 상처투성이 삶을 엿보기도 한다.
박정욱씨는 연세대 불문과를 나와 파리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파리 고등사회과학원(EHESS) 예술연구소장으로 일하는 전시기획가. 그는 '그림 속의…'에서 사랑과 증오의 감정에 휩싸인 인간들의 모습을 예술세계로 승화시킨 유럽의 회화들을 주제별로 탐색하고 있다. 작품 해설서에 가깝지만 시대별로, 작가별로 다르게 해석되고 표현된 사랑을 '첫 키스' '사랑의 진실, 사랑의 거짓말', '이별하는 연인들' 등의 주제로 나누어 친절하게 안내한다는 게 장점이다. 그래서 평소에 수수께끼 같던 그림도 쉽게 다가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버금가는 작품으로 알려진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작 '키스'에 대한 설명을 보자. "클림트의 '키스'를 한번이라도 보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키스는 자아의 해방이며, 키스 속에 감춰진 환각적인 세상, 그 황홀경을 아찔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물과 주변의 경계'를 없애고, 원과 나선형을 반복해서 사용한 것이 그 비결이다."
두 책은 공통의 소재를 다루면서도 접근은 판이하다. 그림 속의 다양한 인생을 맛깔나는 문장으로 읽고 싶다면 함씨의 책을, 서양미술의 흐름을 쉽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박씨의 책이 좋다. 물론 어느 것이든 읽어가는 동안 그림과 대화하는 수준은 부쩍 높아질 것이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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