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빛나는 학생들의 눈망울을 어떻게 잊을 수 있나요. 몸은 떠나도 마음은 항상 한국 학생들을 향하고 있을 겁니다."10일 오후 1시 연세대 위당관 212호. 올 가을 한국을 떠나는 언더우드가의 맏며느리 원은혜(60·낸시 언더우드) 교수가 한국에서의 마지막 강의를 위해 강의실에 들어섰다. 학생들이 학기말 시험과제로 준비해온 발표자료를 꼼꼼히 챙겨보던 원 교수의 두 눈은 어느새 촉촉하게 젖어갔다. 원 교수에겐 지난 1976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대학 강단에 선 이후 28년 동안 정들었던 강단과 학생들을 떠나는 날이자 120여년 4대에 걸친 언더우드 일가의 연세대 교직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지금 학생들의 얼굴을 보는 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찡하더군요. 하지만 내가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끝까지 교사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하는 것이기에 얼른 눈가를 훔친 뒤 마지막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원 교수는 학생들의 발표자료를 훑어본 뒤 평소처럼 학생들과 농담 섞인 대화를 나누며 자유롭게 주제발표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유도했다.
이날 수업에 참가한 14명의 학생들은 "처음엔 너무 엄하다는 소문에 수업을 들을까말까 많이 고민했는데, 선생님 덕에 어떻게 영어를 말하고 쓰는지 이제야 좀 감이 오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1964년 미국에서 언더우드 1세의 증손자인 남편 원한광(61)씨와 결혼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은 원 교수는 71년 남편을 따라 한국에 들어와 76년 서울여대 강단에 처음 섰다. 86년부터는 시아버지와 남편이 재직하던 연세대로 옮겨 18년 동안 언더우드가의 맏며느리로서, 또한 영문학과 교수로서 교단을 지켰다.
원 교수는 20여년간의 교직생활 중 유신에서 5공으로 이어진 군사독재 시절이 가장 괴로웠다고 회고했다. "학교에 군인들이 들어와 학생들을 잡아가는 걸 보면서 '이건 옳지 않다'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날 강의를 마친 후 교수연구실 등의 이삿짐 정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한국을 떠날 채비를 갖춘 원 교수는 "미국에 있는 자녀들이 언제라도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면 적극 환영할 것" 이라며 언더우드 집안과 한국의 인연이 이것이 마지막이 아님을 강조했다.
"아직도 18년 동안 가르쳐온 3,600여명의 학생들 사진과 파일을 보물처럼 소중히 보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한국 학생들을 만나면 언제라도 기꺼이 도울 것입니다. 저와 저의 가족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한국 국민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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