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심화한 대서양 동맹의 균열은 미국 조지아주에서 열린 G8(주요 8개국) 정상회담에서도 결코 치유되지 않았다.9일 프랑스, 독일 등은 나토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이라크 개입 여부, 이라크 부채탕감 규모, 중동 평화 구상 등에 관해 미국을 정면 반박,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일방주의적 행태에 제동을 걸었다.
부시 대통령은 전체 회담에서 "나토가 이라크 문제에 전혀 기여하고 있지 않다"며 "이제 나토가 이라크 안보에 개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부시의 제안은 단순한 '찔러보기' 가 아니었다. 전체 회담 직전 부시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조찬회동을 통해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한데 이어 이달 말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릴 나토 정상회의에서도 나토 개입을 재차 촉구키로 사전에 가닥을 잡았었다.
이에 대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이라크 문제는 나토의 일이 될 수 없다"고 즉각 반박했다. 또 회담에 초청된 레셉 타입 에르도안 터키 총리도 "지금 이라크 문제에서 중요한 대목은 유엔의 역할 확대이지 나토 개입 여부가 아니다"며 프랑스측에 동조했다.
현재 26개 나토 회원국 중 영국 이탈리아 등 16개국이 개별국 차원에서 이라크에 군대를 보낸 상태이다. 이어 부시 대통령이 1,200억 달러에 달하는 이라크 부채의 90% 이상을 탕감해주자고 제안하자 프랑스와 독일 등은 탕감 규모를 50%로 제한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결국 부시는 노르망디 상륙 60주년 기념 미―프랑스 정상회담을 통해 조성된 화해 분위기에 편승, 실리를 취하려 했지만 유럽은 이라크 전쟁의 이득을 독식하면서도 전후 처리에 따른 부담만은 분담하겠다는 부시의 구상을 완강히 거부한 것이다.
시라크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의 재정·무역 적자가 세계 통화 및 금리체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면서 미측에 개선을 요구한 뒤 서방의 민주주의를 중동지역에 이식하려는 미국의 중동구상에 대해서도 "이슬람 극단주의를 부추기거나 문명충돌 위험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며 비판적 자세를 취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阿 분쟁지역 평화군 5만 파견
G8 정상회담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합의는 아프리카 이슈에서 나왔다.
G8은 향후 5년간 7만 5,000명 규모의 평화유지군을 창설, 주로 아프리카 분쟁지역에 파견키로 합의했다고 AP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이는 당초 알려졌던 5만명보다 크게 늘어난 규모다. 평화유지군은 영국과 프랑스 등이 그간 추진해오던 사안으로, 유엔 개입 전 분쟁지역에 파견된다.
그러나 미국의 확대 중동 구상에 대해서는 미국을 제외한 참가국들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해결에 우선을 두어야 한다며 아랍권에 서방 민주주의를 이식하려는 부시 구상에 우회적인 반대를 표시해 진통을 거듭했다. 회의 막판에 부시 미 대통령이 제안한 중동교사 10만 양성 방안, 아랍국가와 서방국가들이 참여하는 원탁회의 개최방안 등이 집중 논의됐다.
G8 지도자들은 이어 알카에다 등 테러단체의 민간항공기 공격에 맞서 탑승자 정보공유, 항공격추에 이용될 견착식 미사일 규제 등이 포함된 대 테러 보안 강화 방안에 합의했다.
이들은 또 고유가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도하라운드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들을 7월말까지 제거하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아울러 세계 최빈국들의 일부 채무 조정, 투자환경 개선, 금융시장 개발, 이주 노동자들의 본국 송금 허용 등의 빈곤퇴치 방안도 마련됐다.
/이영섭기자
■부시-시라크 다시 "냉기류"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60주년 기념식에서 만나 이라크전 반목을 다소 누그러뜨렸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G8 정상회담 무대에서 다시 날카롭게 대립했다. 이라크 주권이양과 관련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면서 양국간에 형성됐던 우호적 분위기도 잠시였다.
두 정상의 기 싸움 양상은 복장 문제에서부터 드러났다. 이번 회담의 호스트인 부시는 개막 회의 자리를 편안한 자리로 유도하기 위해 정상들에게 간편복 차림을 제안, 부시 등 다른 정상들은 니트셔츠나 편안한 자켓 등을 입고 모였다. 하지만 시라크만은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회의장에 나타났다.
구체적인 의제에서 두 정상의 반목은 한층 두드러졌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역할 확대를 주문하자 시라크 대통령은 "그것이 나토의 임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BBC 방송은 이에 대해 "시라크가 부시의 요구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전했다. 두 정상은 이라크 채무 탕감 문제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각을 세웠다.
/김이경기자 moonl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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