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매출이 줄었다고 울상이지만 더 죽겠는 건 사실 입점해있는 패션업체들이예요. 손해를 고스란히 입점업체들한테 넘기니까요. 이런 패션유통의 고질병들을 제거하지 않는 한 한국패션은 성장할 수 없어요.”지난 주말 점심식사를 같이 한 모 패션업체 대표는 한국패션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로 백화점 유통의 문제점을 성토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국내 백화점은 무려 37~40%에 이르는 높은 수수료를 책정하고 있습니다. 10만원짜리 옷 한벌에 3만7,000~4만원 정도를 백화점 수수료로 내는 셈이지요.
물론 매장에 나와있는 직원들 월급과 인테리어 비용도 다 업체쪽에서 부담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수수료를 제외한 6만원으로 각종 원단과 부자재가격에 인건비, 물류비, 홍보 및 마케팅활동비 등 생산가를 제하고 업체의 이윤도 남겨야하니 정말 죽을 맛이겠지요. 물론 재고도 모두 업체가 책임집니다.
매출수수료는 또 국산이냐 소위 명품이냐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납니다. 명품은 백화점의 이미지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일단 점수를 따고 들어가 수수료가 국산브랜드의 절반 수준이예요. 샤넬 같은 대형 브랜드를 유치할 땐 1층 가장 목좋은 자리에 갤러리형태로 매장을 내주면서 인테리어비용까지 백화점쪽에서 부담을 한다니 천양지차이지요.
그렇게 불합리한 관행을 알면서도 왜 백화점에 입점하지 못해 안달이냐고요? 답은 이렇습니다. 소비자들이 일단 백화점에 있어야 좋은 브랜드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또 직영점을 하려면 초기 투자자금이 엄청난데 대부분 패션업체의 규모가 영세하기 때문에 높은 수수료를 감수하고라도 초기 투자비가 적고 단기에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백화점을 선택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고 보면 백화점처럼 땅짚고 헤엄치기 장사를 하는 곳도 참 드물 것 같습니다. 참고로 해외 유명 패션백화점들은 일종의 임대사업을 하는 국내 백화점과 달리 패션상품들을 업체로부터 직접 구입, 판매하며 재고부담도 백화점에서 집니다.
백화점 유통의 이상한 관행과 편향된 소비자 인식이 맞물려 국내 패션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한편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공은 다시 패션업체에 넘겨진 것 아닌가 하는. 해외 명품에 버금가는 브랜드를 만들지않는 이상, 우리 패션상품에 대한 인식제고를 위해 노력하지않는 이상 불합리를 외쳐봐야 주도권은 항상 백화점에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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